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책을 읽는 방법.
얼마 전 독서에 관련된 책을 세 권 빌렸습니다.
‘포커스 리딩’,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그리고 ‘책을 읽는 방법’입니다.
알고 보니 ‘포커스 리딩’은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중 하나였고,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수필 모음집이었지요.
그리고 이번에 읽은 ‘책을 읽는 방법’은 속독과 자기계발서를 까는 내용이 반이고, 소설은 천천히 읽는 게 좋다고 주장해요.
또한, 글쓴이와 주변 작가들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소개했습니다.
책을 읽고 평론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어요.
마음에 듭니다.
그건 저 역시 슬로우 리딩을 지향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책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편입니다.
기술서는 후다닥 보기도 하지만,
문학을 읽을 땐 상상의 나래를 펼쳐요.
빨리 읽는 걸 선호하는 사람은 빨리 읽으면 되고,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으면 느리게 읽으면 됩니다.
하긴 책 읽는 법이 따로 있겠어요.
읽다 보면 자신만의 독서 스타일이 생기는 거지요.
아무튼 ‘책을 읽는 방법’엔 어릴 적부터 책을 즐겨 읽던 소설가의 관점과 기법이 담겨있습니다.
저도 블로그에 책 감상평이 500권쯤 되면 나름의 비결을 책으로 한 번 써 볼까요?
대략 일 년에 20권 정도 감상평을 올리니, 이대로 25년쯤 블로깅하면 책이 한 권 나오겠군요.:D
책을 읽는 방법 - 책갈피
정보의 항상적 과잉공급사회에서 진정한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형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속독은 ‘내일을 위한 독서’ 이다. 그에 반해 슬로 리딩은 ‘오 년 후, 십 년 후를 위한 독서’이다.
왜 소설은 속독을 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소설에 다양한 노이즈가 있기 때문이다.
플롯(줄거리)에만 관심이 있는 속독자에게 소설 속의 다양한 묘사와 세세한 설정들은,
무의미하고 때로는 플롯을 파묻히게 만들어 방해하는 혼입물로 느껴질 것이다.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기 위한 필요악 정도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확실히 스피디하게 스토리 전개만 좇아가고자 한다면 그러한 요소들은 노이즈이다.
그러나 소설을 소설답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바로 그 노이즈들이다.
‘머리로 쓴 도식적 소설’이 재미없는 것은, 그것이 노이즈가 없는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몽테스키외 정도 되는 일류 지성의 소유자가 이십 년이나 걸려 생각한 것을 어떻게 우리가 한두 시간 듬성듬성 읽고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속독법으로 일 분에 삼십 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맹스피드로 눈에 새겨넣고는 이해가 될 것이라고 기대 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 아닐까?
그것은 최상의 보르도를 단숨에 마셔버리는 것과 같은 부끄럽고 천박한 짓이 아닐까?
속독의 경우는 단어만 죽 훑어보고 조사나 조동사는 경시하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단어를 연결해버려,
긍정이냐 부정이냐 하는 가장 중요한 내용 파악조차 실패할 위험성이 크다.
글을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어휘력보다도 조사, 조동사의 사용법에서 드러난다.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의 생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오독’을 즐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자의 의도’를 생각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갖고 읽을 것. 이것이 깊이있는 독서체험을 위한 첫번째 방법이다.
우리는 항상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속 어딘가에 ‘천재원망(天才願望)’을 품고 있고,
속독책은 그런 심리를 교묘히 파고들어 ‘하면 된다!’ 라는 암시를 들먹인다.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독서의 본래 목적이다.
읽은 후에 누군가에게 설명할 것을 전제로 책을 읽으면 잘 모르는 부분은 다시 읽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해력도 높아진다.
양의 독서는 이제 끝내야 한다. 앞으로는 자신에게 소중한 책을 소중히 여기며 읽는 독서를 하자.
세상에 넘쳐나고 있는 막대한 책들은, 평생 동안 아무리 애써도 극히 일부밖에는 읽을 수 없다.
“독서에는 시기가 있다. 책과의 절묘한 만남을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젊은 시절의 기억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를 각인시킬 뿐인,
삼진 혹은 파울 같 은 독서법에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나라는 소설가의 창작법> - 오에 겐자부로
논쟁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의견→이해→그러나,부정→자신의 논지 전개’라는 형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일반론(상대의 주장) → 반론’의 ‘일반론’ 부분에,
일반론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주장으로 쉽게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을 슬쩍 집어넣는 것은 조금 교활하다.
by 月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