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용량 무접점 키보드. 리얼포스 87u 저소음 차등.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물건은 무얼까?
단연 컴퓨터다.
든든한 동료로서 함께 일하기도 하고,
때론 친구가 되어 놀아도 주는 그런 녀석.
그런데 이 녀석과 대화를 나누려면 몇 가지 도구가 더 필요하다.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
그리고 이 녀석과 소통을 도와주는 입력 도구인 키보드와 마우스.
컴퓨터,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이 넷은 한 세트로 움직인다.
사람과 사람은 스킨십이 잦을수록 쉽게 친해진다.
기계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나와 신체 접촉이 가장 많은 녀석은 두말할 것도 없이 키보드!
어떤 키보드를 쓰느냐에 따라 컴퓨터와 소통할 때 손가락 피로도가 다르다.
그래서 작년부터 집에서 쓰는 키보드를 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 나 자신에게 주는 생일 선물이란 명목으로 정전용량 무접점 키보드인 Realforce 87u 저소음 차등 10주년 모델을 구매했다.
운이 좋은지, 미개봉 신품을 단순 변심으로 파는 사람을 만나서,
봉투에 잘 담아 떨어지지 않게 들고 왔다.
비록 상자에 키보드가 그려져 있긴 하지만,
왠지 피자나 도넛이 들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상자를 열려고 보니 딱지가 붙어있다.
'개봉하면 끝!'
그러나 교환이나 환불을 할 생각따윈 없으니 과감히 뜯었다.
먼 길을 여행한 키보드는 부직포가 아닌 얇은 비닐에 쌓여있는데,
36시간 기차를 입석으로 타는 정도의 피로를 느꼈을 것 같아 측은함이 들었다.
뽁뽁이라도 하나 깔아주지.
운 나쁘면 키보드 개봉하기 전부터 고장이 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닐을 벗기고 보니 튼튼해 보이는 Realforce 87u가 자태를 뽐낸다.
'몇 타를 치든 받아내겠어! 수만 번이라도!'
뒷면엔 모델명과 제품 번호가 적혀있다.
키보드 덕후들의 위키(http://deskthority.net/wiki/Realforce)에서 모델명을 검색해보니,
YF110S는 한국에서 판매되는 10주년 저소음 차등 모델이라고 친절히 설명을 적어놨다.
LED색상은 빨강이라는 덕후들이나 신경 쓸 정보도 함께!
뒷면에서 느끼는 건 참 신경 써서 잘 만들었다는 거다.
키보드를 본체의 왼쪽에 놓을지, 오른쪽에 둘지에 따라 선을 정리하도록 위에 홈을 파 두었다.
FC660C를 쓰면서 선 마감이 항상 눈에 거슬리는데, 그래서인지 리얼포스의 마감이 더욱 만족스럽다.
회사에선 레오폴드의 FC660C라는 미니 키보드를 쓴다. FC660C는 키보드가 작고 야무진 게 자리를 조금 차지하는 점은 좋지만, 생각보다 기능 키를 자주 쓰는 내게는 약간 불편한 면이 있다. 그런 면에서 텐키레스인 Realforce 87u는 확실히 내 취향을 적절히 잘 반영한 키보드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가지 함정이 있었으니...
FC600C의 미니 배열에 매우 익숙해져서 그런지, Realforce 87u의 오른쪽 아래 방향키 옆에서 자꾸 FN키를 찾게 된다.
앞으로 나와 함께 할 Realforce 87u.
키 몇 개를 다른 색상으로 바꿔 꼈더니, 훨씬 산뜻한 느낌이다.
글도 쓰고, 코딩도 하고, 오래도록 잘 지내봐야지.
by 月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