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위런 서울 2014. 21km 하프 마라톤 후기.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삼십 대 초반 팔팔한 청년인데 벌써 체력이 떨어지면 안 되지.’
무작정 위런 서울 2014에 신청했다.
10km를 뛸까 21km를 뛸까 3분을 고민하는 사이 10km는 신청 마감이 되어버렸고,
‘21km 완주는 하겠지.’ 심정으로 신청했다.
까만 티셔츠가 우편으로 배달되고, 그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 순간 부담감이 시작되었다.
21km는 예전에. 십 년도 더 전에 한번 딱 뛰어 봤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회복기를 거치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나 시험 삼아 뛰어본 거였는데, 2시간 17분이 걸려서 들어왔고 뛰고 나서 무릎이 아파 일주일간 걷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마라톤 할 때는 가벼운 신발을 신는다고 하지만, 무릎과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 무겁더라도 쿠션이 빵빵한 에어맥스 2014를 신고 뛰었다. 기록 세울 것 아니라면 하프 마라톤 정도는 에어맥스 신고 뛰어도 문제없다.
십 년 전에는 학생이고 시간이 많아 하루에 두 시간 가까이 운동을 했다. 운동장 돌고 스트레칭 하고 본 운동 하고 합쳐서 그 정도 했는데 요즘엔 운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출근할 때 자전거 20km 정도 타고, 일주일에 한 번 5km 가량 뛴다. 지난 십 년간 하프는커녕 10km도 뛰어본 적이 없기에 연습을 좀 하기로 마음먹었다. 위런 서울이 열리기 일주일 전 월요일 밤에 3km정도 뛰고, 화요일 밤에 3km 정도 뛰었다. 그리고 금요일은 평소대로 5km 뛰었다.
‘그래. 이 정도면 완주는 하겠다.’
기록을 세울 것은 아니고, 평소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서 뛰는 거라 특별히 다른 몸 관리는 하지 않았다. 위런 서울 2014 전날 지인을 만나 맥주와 청하를 조금 마셨고, 입가심으로 알코올과 과일 맛을 섞은 크루저 비슷한 음료를 한 병 마셨다. 안주는 멕시칸 요리인 퀘사디아와 볶음밥, 감자튀김을 먼저 먹고, 광어 숙회를 이차에서 먹었다. 아침엔 닭 다리와 잡곡밥. 김치 등으로 먹고, 과일을 조금 먹었다.
막상 하프를 뛰려니까 긴장이 되는지 화장실을 두 번이나 갔다.
위런 서울 2014의 시작.
한 시 반 즈음 광화문에 도착.
반바지와 나이키 위런 티셔츠, 등산 양말에 런닝화. 그리고 암밴드와 휴대폰을 빼고 모두 물품 보관소에 맡겼다.
시간이 많이 남는데 비가 오려는지 날이 쌀쌀해서 몸을 움직움직 해 주었으나 몸이 좀 굳었다.
2시 20분경 단체로 스트레칭을 하고. 3시 출발 예정이던 A조가 3시 2분에 출발!
나는 B조로 5분을 더 기다려서 출발!
이번 마라톤은 ‘우선순위는 무리하지 않고 뛰었을 때 어느 정도 속도가 나오나?’를 알기 위해 신청한 것이니 천천히 뛰기로 했다.
처음의 마음가짐은 ‘이 속도로 천천히 15km까지 뛰고 속도를 조금 올려보자.’
4km 정도 뛰니 갑자기 배가 아프다. 아침 먹은 지도 오래되었는데 너무 많이 먹은 건지. 1분 동안 걸어서 조금 안정을 시키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11km 지점까지 한두 번 더 걸었다. 지치기 시작한다. ‘2:00’ 풍선을 달고 뛰는 페이스 메이커들이 11km 지점에서 나를 앞질러 갔다. 지금 체력으론 저 속도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간간이 배가 아파서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한다.
15km 지점 통과.
다리에 힘이 없다.
10km도 달려보지 않은 다리에 근지구력이 있을 리가 없다. 숨이 차서 못 뛰면 주어진 체력 내에서 전력을 기울인 느낌이 드는데 다리가 아파서 못 뛰다니 아쉽다.
17km 지점을 통과하고 아무래도 뭐라도 좀 먹고 힘내서 뛰어야겠다 생각이 들었는데, 씹을 거리는 없고 음료만 준비되어 있다. 쉼터가 나오면 바나나 하나 먹겠다고 달려왔는데 좀 서럽다. 배 아프던 건 좀 나았다. 아무래도 전 날 먹은 광어 회가 소화되면서 가스가 찬 거 같은데 달리면서 부스터로 썼더니 한결 몸이 가볍다. 달리기 전 날 찬 음식은 피하는 게 좋겠다. 기록을 세우고 말고를 떠나 속이 불편하면 힘드니까.
18km 왼쪽 종아리가 단단하게 굳었다. 놀랬나 보다.
‘얘가 왜 이러나? 평소엔 잘 뛰지도 않더니 오늘 날 잡았네?’
잠시 멈추어 서서 다리를 풀고 스트레칭을 한 번 하고 다시 출발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좀 끝까지 뛰어보고 싶은데 힘들다. 뛰다 걷다 반복한다.
결승점이 보이고 선 온 힘을 다해 뛰었다.
100m 뛰듯이 뛰었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간식을 받고, 짐을 찾고서 몸을 살짝 풀어주고 앉아서 빵을 먹었다. 목이 메서 먹기가 어렵다. 그토록 찾아 헤맨 바나나가 간식 주머니에 들어있어 반가운 마음에 날름 먹었다. 곡물바를 막 꺼내 입에 물었는데 목이 메 더는 못 먹겠어서 반 만 먹고 짐을 싸서 일어났다. 원래는 콘서트를 좀 볼까 했는데 귀찮다.
저 멀리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뒤로하고 신길역까지 걸었다. 가는 중에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진다. 몸은 지치고 힘든데 비까지 맞으니 잠깐 처량한 기분이 든다. 샛강 다리가 참 운치 있는 다리인데, 지쳐서 배고픈 좀비처럼 다리를 질질 끌며 걸으니 왜 이리 길기만 한지. 분위기를 느낄 틈이 없다.
전철엔 자리가 없었으나 앞에 앉은 천사가 신도림에서 ‘문이 열렸습니다.’를 듣고 날아갔고, 그 자리에 앉아 편안히 집에 왔다.
파워 에이드 한 병 다 마시고, 막걸리 한잔하고, 배 먹고 생강차 마시고 계속 마시니까 살겠다.
공식 기록은 위런 서울(http://result.werunseoul.com/login_web.html)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번 위런 서울에서 21km 하프 마라톤을 뛰며 제일 잘한 것은, 쿠션이 빵빵한 신발을 신은 거다. 발목이나 무릎에 별 무리가 안 가서 회복이 빠르다.
그리고 위런 서울 2014를 뛰기 일주일 전까지 감기로 고생했는데 나아서 참 다행이다.
기침 감기가 하도 오래가서 위런 2014에 나가기 전에 받은 결핵 검사가 오늘 나왔는데 정상이라는 기쁜 소식이다.:D
위런 서울 2014를 완주하면 컵 받침으로 쓰기 딱 좋은 크기의 메달을 준다. 이런 거 3~4개 붙이면 냄비 받침으로 좋을 것 같다.
이틀 동안 다리 앞쪽 근육이 비명을 질렀고, 계단을 내려가기 어려웠다. 호랑이 기름을 바르고 마사지를 했더니 삼 일 만에 많이 괜찮아졌다. 앞쪽 근육에만 무리가 간 것은 달릴 때 다리 앞쪽과 뒤쪽 근육을 균형 있게 쓰지 못해서인데, 아마 달릴 때뿐 아니라 평소에 걸을 때도 다리 앞쪽 근육만을 써서 움직이는 게 습관이 돼서 그렇다. 다리 근육을 골고루 쓰도록 습관을 들여야겠다.
위런 서울 2014 21km 하프마라톤 타임 랩스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