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통찰지) 수행이란?
Vipasanā는 vi(특별하게) – passanā(본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특별하게 본다는 뜻이다.
수행은 수영으로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팔을 젓지 않으면 아래로 떠내려 간다. 수행은 반드시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장소에서 집중 수행을 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수행이다. 급히 서두른다고 깨달음이 오지 않는다. 깨달음은 때가 되면 저절로 익는 과일처럼 시절 인연이 무르익어야 찾아온다.
위빠사나는 현재 일어나는 현상에 마음챙김 하는 것이다. 마음이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다가오는 미래를 설계하지도 않고, 머무는 바가 없이 현재의 순간 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거울이 온갖 형상을 비추지만 자신은 변하지 않듯이, 맑은 호수에 구름이 흘러가도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듯이, 어떤 대상이 일어났다 사라져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는 방법
스님마다 견해가 차이가 있으나, 궁극적인 진리는 같다. 팔정도가 수준에 도달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의 길을 여덟 단계로 나눠 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수직 구조의 사다리라는 뜻은 아니다. 다음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를 완전히 익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 길은 나선형에 가깝다. [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계를 완성하고, 정을 완성한 후에 지혜를 닦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집중력을 닦지 않고는 지혜를 닦을 수 없다 [우 레와타 반떼 ]
몸에 대한 마음챙김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네 가지 자세(걷고,서고,앉고,눕고) 대한 마음챙김
분명한 알아차림 -몸의 움직임에 대한 마음챙김
몸의 32부분에 대한 관찰
사대요소에 대한 관찰
아홉 가지 묘지에서의 관찰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
삿다 – 담마에 대한 확고한 믿음
위리야(또는 빠다나) – 불요 불굴의 노력
사띠 – 지속적이고 강력한 주의 기울임
사마디 – 깊은 짐중(깊은 삼매)
빤냐 – 지혜(꿰뚫어 보는 지혜+깨달음 enlightenment)
믿음만 강하면 남의 말을 쉽게 믿고, 지혜만 강하면 자기의 선입견과 비교해서 마음이 삐뚤어질 수 있으므로 믿음과 지혜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노력이 약하면 졸음에 빠지고, 노력이 강하면 마음이 산란하고 들뜰 위험이 있다.
주의 기울임은 아무리 강해도 지나침이 없다.
주시, 분명한 알아차림 그리고 지혜
경전에서는 주로 양자 사이의 관계 [주시와 분명한 알아차림<장부경>, 지혜와 관찰<반야심경>, 주시와 지혜<대념처경>중 7각지]를 다루고 있지만 아짠 차 스님은 이 셋을 함께 활용한다. 주시(sati)는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분명한 알아차림(sampajañña)은 그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무상·고·무아와 인과의 흐름을 보는 것이고, 지혜(pañña)는 무상·고·무아에서 벗어나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진 촬영에 빗댄다면, 대상을 포착하는 것은 주시, 대상에 정확한 초점을 맞추는 것은 분명한 알아차림. 대
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찍는 것은 지혜에 비유 될 수 있다.
식도 생멸하고 주시도 생멸한다. 생멸하는 식이나 상을 끊임없이 주시함으로써 주시(아는마음)를 거듭 일으켜 나가야 한다. 하나의 주시가 계속해서 또다른 주시를 일으켜 나가는 식으로 반복 해 나가다 보면, 삼매가 계발되어 주시(아는마음)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거듭해서 일어난다.
좌선 중 통증을 느낄 때
무시한다.
통증을 관찰한다. 가장 심한 통증을 포착하여 그 변화를 관찰한다.
느낌과 원인인 촉(觸). 촉의 윈인인 지·수·화·풍의 부딪침을 함께 관찰한다.
통증을 피하려는 마음상태를 관찰한다.
그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자세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리며 자세를 바꾼다.
통증을 대상으로 알아차린 예(Udena sutta, U.7.10)
우데나 왕의 첫째 부인 사마와띠(밧다와띠야 장자의 딸 → 고사카 재정관의 양딸. 가난한 자들에 음식을 나누어 주는 식당이 시끄럽자, 식당에 울타리(vati)를 쳐서 조용하게 만드는 지혜로 인해 사마(sāmā)에서 사마와띠(sāmā-vati)로 불리게 되었다.)는 셋째부인인 마간디야(부처님이 똥 오줌으로 가득찼다고 말한 것에 앙심을 품었음)의 증오심 때문에 방에 갇혀 불타 죽었다. 그때 사마와띠와 시녀들은 몸의 고통스러운 느낌에 마음을 집중하여 수행 했고, 죽기전에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를 증득했다.
일곱가지 단계의 청정
실라 위숫디 – 도덕성의 청정, 또는 덕(virtue)의 청정
찟다 위숫디 – 마음의 청정
닷티 위숫디 – 견해의 청정
깡카 위따라나 위숫디 – 의심을 극복 함에 의한 청정
막가냐나 닷사나 위숫디 – 도와 도가 아닌 것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빠디빠다 냐나 닷사나 위숫디 – 수행도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냐나 닷사나 위숫디 – 앎과 봄에 의한 청정
정신적·육체적 과정의 원인과 결과를 깨닫는 세가지 경우
육체적 과정이 원인이고, 정신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발을 드는 동작이 있기에 관찰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정신적 과정은 원인이고, 육체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의도는 원인이고 발의 동작이 결과인 경우
정신적 과정이 원인이고, 다른 정신적 과정이 결과인 경우 ex) 헤매는 마음이 원인이고, 관찰하는 마음이 결과인 경우
정신적 과정은 교대로 일어났다 사라지며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ex)생각하는 마음과 관찰하는 마음
아주 빠르게 교체되고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대 성인과 열 가지 족쇄
성인의 네 단계 | 설명 | 10가지 족쇄 | 제거되는 족쇄 |
수다원(흐름에 들어가는분, 예류자) | 출세간적인 팔정도에 들어가는 것 욕망, 분노등과 같은 정신적 오염원은 완전히 파괴되지 않기 때문에 강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에게 욕망, 분노 등이 일어난다. 사악처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 유신견
계율과 의식애 다한 집착
의심
감각적 용망
악의
욕계에 대한 욕망
무색계에 대한 욕망
자만
들뜸
무명
1~5는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묵고 가두는 낮은 족쇄이다. 6~10은 색계와 무색계에 묶고 가두는 높은 족쇄이다. | 1, 2, 3 |
사다함(한 번 돌아오는 분, 일래자) | 죽은 뒤 감각적 욕망의 영역으로 한 번 돌아올 수 있다. 감각적 욕망과 분노(미움,혐오,악의)의 거친 질이 완전히 파괴되어 욕망, 또는 탐욕은 점점 더 약해지고 엷어진다. 그러나 미세한 부분은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하면 화가 일어날 수 있지만 분노가 매우 엷어서 제 삼자는 모를 수도 있다. | 4, 5가 엷어짐 |
아나함(돌아오지 않는 분, 불래자) | 브라흐마 보다 더 높은 세계에 태어난다. 모든 감각적 욕망과 모든 분노(미움,악의,혐오)가 예외 없이 전면적으로 파괴된다. 감각적 욕망을 전혀 갖지 않기 때문에 좋은 음식, 좋은 풍경, 좋은 향기 등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가 모욕해도 화가 일어나지 않고, 마음이 언제나 고요하고, 평온하고, 침착하다. 성욕이 없기 때문에 성 생활을 할 수 없다. | 4,5가 제거됨 |
아라한(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는 분) | 어디에도 태어나지 않는다. 세가지 단계의 깨달음으로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정신적 오염원을 파괴한다. 어떤 정신적 오염원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평화롭고 행복하고 고요한 삶을 산다. 아라한은 대상이 감각 대상으로 들어와 알아차리는 과정까지는 일어나지만 거기에 좋거나 싫거나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아라한의 마음은 단지 작용만 하는 마음(kiriyacitta)이기 때문에 과보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선업도 악업도 되지 않는다. 재가신도가 아라한이 된 경우에는 속인으로 계속 살 수 없고, 즉시 출가하거나 아니면 즉시 빠리 닙바나에 들어야 한다. | 6,7,8,9,10 |
깨달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요인
염각분(주의 기울임의 요인) – 몸과 마음에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주의 기울임
택법각분(조사의 요인) – 무상·고·무아를 꿰뚫어봄
정진각분(노력의 요인) – 꾸준히 균형 잡힌 노력을 기울임
희각분(환희의 요인) – 수행 중 기분 좋은 경험
정각분(집중의 요인)
경안각분(고요의 요인)
평등각분(평정의 요인) – 행복과 불행의 중간에 있는 상태
여섯 감각 문 닫기
보여진 것, 들려진 것, 냄새 맡아진 것, 맛 보아진 것, 닿아진 것, 생각되어진 것에 강력하게 주의 기울임을 지속하면 감각문은 닫혀진다. 단지 관찰을 하면 좋은지 나쁜지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혐오나 욕망을 가질 수 없다.
현세의 4분석지에 영항을 주는 전생의 세 가지 바라밀
네 가지 학습자
더디게 배우고, 갈애의 기질을 가진 학습자 – 거친 몸을 관찰하는 알아차림이 좋다. (신념처)
빠르게 배우고, 갈애의 기질을 가진 학습자 – 미세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수념처)
더디게 배우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학습자 – 의식,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심념처)
빠르게 배우고, 그릇된 견해를 가진 학습자 – 법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다. (법념처)
주의 기울임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
존재의 청정
걱정과 슬픔의 극복
비탄의 극복
정신적 괴로움의 극복
육체적 괴로움의 극복
도-지혜를 얻는 것
닙바나를 얻는 것
16단계 꿰뚫어 보는 지혜
육체성과 정신성을 구별하는 지혜, 견해의 청정을 얻는다.
원인과 결과의 지혜와 의심을 극복함에 의한 청정을 얻는다.
분명한 이해의 지혜, 정신적·육체적 세가지 특성을 아주 분명히 이해한다.
일어남과 사라짐의 지혜, 도와 도가 아닌 것의 앎과 봄에 의한 청정.
해체(사라짐)의 앎.
두려움(공포)의 자각(awareness)의 지혜
비참(misery)의 지혜
혐오 혹은 지루함의 지혜
해탈하고자 하는 지혜
재관찰의 지혜
평정(평온)의 지혜
적응의 지혜
성숙의 지혜
도 지혜
과 지혜
최상의 지혜
16가지 마음
대념처경이나 염처경에 나오는 마음관찰 수행법으로 열 여섯 가지의 마음을 열거하고 있다.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수축된 마음(해태와 혼침)
산란한 마음(들뜸)
고귀한 마음(색계, 무색계 마음)
고귀하지 않은 마음 (욕계의 마음)
위가 있는 마음 (삼계의 마음)
위가 없는 마음(출세간의 마음)
삼매에 든 마음 (근접삼매와 본삼매)
삼매에 안든 마음
해탈한 마음(반대되는 것으로 대체함에 의한 해탈, 억압에 의한 해탈,근절에 의한 해탈, 편안히 가라앉음에 의한 해탈, 벗어남에 의한 해탈)
해탈하지 못한 마음.
사성제를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그룹 짓기
딴하(애착, 갈망)를 일컫는 둘째 진리인 괴로움의 원인의 진리는 원인이고, 정신적·육체적 현상을 일컫는 첫째 진리인 괴로움의 진리는 결과이다. (즉각적인 원인과 결과)
중도, 또는 팔정도를 일컫는 넷째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진리는 원인이고, 닙바나(열반)을 일컫는 셋째 진리인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결과이다.(즉각적이지 않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네 부류의 사람
첫 번째 부류 – 아주 짧은 설명 만으로도 도와 과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분들. 두 문장을 듣고 수다원이 된 사리뿟따 존자와 목갈라나 존자처럼 깨어 있는 사람들
두 번째 부류 – 초전 법륜경을 듣고 수다원이 되는 부류
세 번째 부류 – 체계적으로, 단계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사람 부류. 10%의 사람로써 이번 생에 도와 과를 증득할 수 있다. 지혜를 가진 사람들로써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세가지 원인을 가진 사람이다.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
네 번째 부류 – 두 가지 원인을 가진 사람. 탐욕과 성냄이 없으나 지혜까 없는 사람이다. 이번생에 선정과 도와 과를 얻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열반을 얻기 위해 수행을 계속 해야 한다.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다섯 다발에 대한 비유
물질의 다발[작은 거품덩어리(foam)] - 작은 거품 덩어리에서 어떤 중심부를 발견할 수 없듯 아무것도 발견 할 수 없다.
감각의 다발[물거품(bubble of water)] - 일어나자마자 즉시 사라지는 물거품과 같다.
지각의 다발[신기루] – 실체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주의 기울여 보면 실체적인 것은 없다.
정신적인 형성의 다발[바나나 나무 줄기(파초 줄기)] – 50가지 정신적 상태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벗길 때, 어떤 실체적인 것도 발견 할 수 없다.
의식의 다발[마술사] – 생각을 할 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라고 여긴다. 이런식으로 의식은 우리를 속인다.
바히야경 (위빠사나 수행의 정수)
바히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 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
맛지마 니까야 열번째경 46절 47절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 같이 칠 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칠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같이 육년을... 오년을... 사년을... 삼년을... 이년을... 일년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일년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같이 일곱달을... 여섯달을... 다섯달을... 네달을... 세달을... 두달을... 한달을... 반달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반 달은 그만두고,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이와 같이 칠일을 닦는 사람은 두 가지 결과 중의 하나를 기대 할 수 있다. 지금 여기서 궁극적 해탈의 지혜를 , 존재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것은 ‘아나함’ 또는 ‘돌아오지 않는 경지인 불환과’의 성취를 말한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이것은 존재들을 정화하고 슬픔과 비탄을 초월하고, 몸과 마음의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진리의 길을 성취하기 위한, 열반을 실현하기 위한 ‘바른길’이다. 이 길이 바로 사념처이다.” 라고 설한것은 이와 관련하여 말한 것이다.
통나무의 비유담
가까운 쪽(이 쪽) 둑에 걸리지 않는다면,
[여섯 감각문 (눈,귀,코,혀,몸,마음)]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먼 쪽(저 쪽) 둑에 걸리지 않는다면,
[여섯가지 감각 대상(보이는 대상, 소리, 냄새, 맛,마음의 대상, 닿을 수 있는 대상]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물 속에 가라앉지 않는다면,
[감각적 존재나 무생물 등에 애착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사람이 가져가지 않는다면,
[비구가 속인과 온당치 않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천인이 가져가지 않는다면,
[브라흐마 신이나 천인이 사는 세계인 천상에 태어날 목적으로 좋은일을 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소용돌이 속에 빠지지 않는다면,
[다섯가지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썩지 않게 된다면,
[실제로 고결하지 않은 자가 고결한 체 하는 것]
바다에 도달할 것이니라.
[열반에 도달할 것이다.]
참고 자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사띠 사마디 – The Anapanasati sutta (www.dhammasukha.org)』 – 위말라 람시 스님 지음.
『위빠사나,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 – 아짠 차 지음, 김열권·김해양 옮김.
『부처의 길, 팔정도』 -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 지음, 오원탁 옮김.
『우 레와타 반떼 법문』
『위빳사나 수행 28일』 – 찬메 사야도 아쉰 자니까 비왐사 법문, 케마 옮김.
『법구경 이야기』 – 무념·응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