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같은 시대를 사는 다른 사람.


82년생 김지영과 나는 같은 학년으로 국민학교에 다녔을 테고, 어쩌면 내가 칠판지우개를 터는 동안 수많은 김지영 씨가 내 곁을 스쳐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중학생 때나 고등학생 때 분명 여러 차례 그녀들과 마주쳤을 텐데. 아니 어쩌면 그 이후라도....
작가는 82년생 김지영이 주변의 여자 친구들, 선후배들, 그리고 작가의 모습과도 많이 닮았다고 했지만 왜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소설 속 김지영 같은 인물이 그려지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건 내가 남자라서 여성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주변에 김지영 씨 같은 사람이 없어서일까?
물론 살면서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거나 거지 같은 경험을 했던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겠지만, 적어도 성인이 된 이후에 김지영 씨처럼 불행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는 여성이 처하는 여러 문제를 구체적 자료를 들어 드러낸다.
확실히 여성은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소설 속 바바리맨이나, 버스까지 따라 탔던 미친놈. 그리고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는 방범 요원 등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범죄를 시작으로 보다 강력한 범죄가 일어나기 쉬우며,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어떤 남성이 작정하고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여성은 큰 위험에 처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술을 마셨던 아니던 상대방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살다 보면 태도가 단정하고 깔끔하지만, 뒤에서는 헐뜯는 악당들도 마주치게 되고, 때로는 눈앞에서 자기 목소리가 더 크니 자기 말을 들으라는 불합리한 인간도 만나게 된다.
거래처 부장처럼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되면 다른 사람을 마구 부리려는 사람도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게 당연한 권리인 줄 알고, 이성이든 동성이든 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이빨을 터는 작자들이다.
힘의 우위에 있는 누군가가 여차하면 힘을 행사할 생각으로 상대방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은 정말 억울하고 손 떨리고 재수 없는 일임이 틀림없다.
뭐 이런저런 재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면 누군가는 김지영 씨처럼 속으로 삭이고, 누군가는 강혜수 씨처럼 부당함을 소리쳐 외치고, 누군가는 김은실 팀장처럼 더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바꾸려고 한다.
모두가 똑같이 대처할 수 없다. 사회에서는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더럽게 치사해도 다른 성취를 위해서 잠깐 눈을 감아야 할 수도 있고, 다 포기하고 맞설 수도 있다. 이건 개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린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의 1982년부터 2011년까지를 읽으며, 사회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문제들을 잘 집어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 그녀가 결혼하는 2012년부터는 전혀 공감이 안 된다.

결혼 전에 서로에 대해 더 알아봐야 하지 않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동반자로서 함께 살아갈 이유가 있나?
자기 인생인데 서로에 대한 신뢰와 확신도 없이 될 대로 되라 슬롯머신 돌리듯 결혼을 할 수가 있나?
아이를 가지는 부분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렇겠네. 오빠도 힘들겠다. 근데 나 오빠가 돈 벌어 오라고 해서 회사 다니는 건 아니야. 재밌고 좋아서 다녀. 일도, 돈 버는 것도."
라는 말을 하고는 덜컥 애를 가지다니?
만약 둘 사이에 서로 만족할 만한 협의가 없었다면, 합의점을 찾을 때까지는 피임에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그런 합의도 없이 남자가 피임을 거부한다면, 늦기 전에 이혼하는 게 나은 선택이리라. 배려라곤 없는 사람과 함께 사는 건 혼자 사는 것만 못할 테니까.
그런 선택의 시간을 다 지나 보내고, 세상 밖으로 아이가 나올 때쯤 해서 어떻게 육아를 할지에 대해 부부가 이야기를 나눈다니. 불행 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강 건너에 목적지가 있다면 강을 어떻게 건널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미리 알아보는게 당연하다.
'강을 건너다 물살이 갑자기 급해지거나 발을 헛디뎌서 빠져 죽을 수도 있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지?'
'수영을 배우고 몸통에 밧줄을 묶어서 건널까?'
'뗏목이나 배를 만들까?'
이런 준비를 하고 건너도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인데,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 부부는 '어! 강이다! 일단 뛰어!' 그러고 뛰어들었다.
그럼 여유롭게 강을 건너기는 당연히 어렵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다.

둘은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이상한 결론이 났다.
'육아는 누가 전담할지, 비용은 얼마나 들지,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를 커다란 종이에 차분히 정리해 갔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정대현 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이 사람들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약지 손가락을 자르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서슴없이 손가락을 자를 것이다.
가족의 일은 가족 구성원이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지 일반적인 걸 따를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안정을 포기하느니 자기 삶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일반적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으로 합리화했다.

김지영 씨가 결혼할 무렵부터 일은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인과다.
그녀는 세 번의 선택을 했다.
첫째, 정대현 씨와 결혼하기로 했다.
결혼 후 생활이 전혀 어떨지 상상이 안 가는 사람이라면 결혼하면 안 된다.
하물며 결혼하면 나빠질 것으로 보이면 더더욱 안 된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라는 소설속 내용을 보건대 김지영 씨는 부정적인 미래가 예상되는데도 결혼을 했다. 왜 그랬을까?
둘째, 아이를 낳기로 했다.
아이를 낳으면 자신만 잃을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고, 아이를 낳기보다는 그것들을 지키고 싶다면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되었다.
아이는 정말 가지고 싶지만 키울 자신은 없다면 둘이서 잘 상의를 하고 합의점을 찾은 뒤 아이를 가졌어야 했다.
행여나 정대현 씨가 강압적으로 아이를 가지게 했다면, 그는 감옥에 가는게 맞다.
셋째, 육아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를 가진 뒤에 부부간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경제적인 이유든 다들 그러니까 그래서든 간에 결국 김지영 씨가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물론 그 결정은 번복될 수 있다.
"막상 키우다 보니까 너무 힘들다. 얼마 있다가 나랑 바꿔줘."
이렇게 역할을 바꾸면 되는 것 아닌가?
김지영 씨는 결혼한 뒤로 어쩔 수 없다며 핑계만 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 그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위협으로만 받아들인다.

세상엔 엿 같은 일이 많다.
누군가 빅엿을 줬을 때 "나는 괜찮으니 당신이나 드세요."
이렇게 사이다 발언을 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여러 이해관계 때문에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쩔 수 없이 엿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생강엿을 먹을지 호박엿을 먹을지 정도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엿이면 다 엿이지 포기하고 아무 엿이나 먹는 사람은 인생이 불평이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은 기회를 찾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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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1956-1989


내게 소설가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다.
연필을 악기 삼아 연주하는 예술가들.
그들이 던진 문장이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곳에 데려가서,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겪게 해준다.
소설은 가장 적은 투자로 할 수 있는 여행이고,
아무리 큰돈을 들여도 만나기 힘든 경험을 선사한다.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인 이야기들이 아직도 팔팔하다.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1971-1989 - 책갈피


박순녀 - 어떤 파리(巴里)

남편과 아내가 따로따로 그 인생을 걷는 일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모멸을 가지고 있다. 전란을 당해 그 화를 피할 때 남자 혼자만을 떠나보내는 부부관계가 견딜 수 없었다. 잠시의 피난으로 알았다고도 하고 도저히 행동을 같이할 사정이 아니었다고도 말들을 했다. 아니다.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편리 위주의 남자와 여자관계가 나를 절망케 해왔다.

“서형이나 나나 우리는 언제나 지도를 받는 쪽이오. 이 지도받는 쪽이 어쩌다 한마디 하면 저 자식 공산주의다. 하고 나온단 말예요. 도대체가 권력은 필연적으로 반역자를 만드는 법 아니요. 반역자가 없는 것이 얼마나 비관이냐를 모른단 말예요. 우리 권력은.”

송기숙 - 백의민족(白衣民族)

그런데 이 여인은 아까도 눈을 끌었던 대로 여간 품위가 있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방금도 자리에 앉는 자태가 꼭 논에 내리는 학(鶴)이었다. 자리를 정해놓고 조심스레 한번 주위를 둘러보고는, 몸무게를 치올리듯 치맛자락을 한쪽으로 쓸어올리며, 살포시 자리에 몸을 내려놓았다. 학이 앉을 자리를 어름잡아놓고 허공을 날아 한 바퀴 주의를 살피고는 조심스레 미끄러내리다가 날개를 활닥여 몸무게를 찔근 치올리며 모 포기 사이에 다리를 내려놓듯⋯⋯.

“네 이놈! 아까는 나를 사정없이 퉁겼겠다! 이제 맛 한번 봐라. 이렇게 어르며 손톱에 호호 독을 넣어가지고 덤비니까, 예쑤님이 겁이 나서 도망을 치려고 했습니다. 가만있어, 그러지 말고 신사적으로 하자. 그럼 이마빼기를 맞겠나 그 대신 돈을 내겠나,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라. 그래서 두 손을 이러고 있는 겁니다.”
폭소가 터졌다.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들 웃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빙그레 웃는 것도 다 속이 있구나!”

김원일 - 바라암(波羅巖)

돌아보지 않겠다 다짐하건만 지수는 몇 차례 숲에 가린 바리암을 더듬는다. 어룽진 눈으로 암자를 더듬으며 소리 죽여 운다. 오솔길로 뻗어나온 칡넝쿨과 나무뿌리에 걸려 휘청거리기 또한 몇 차례, 그의 소맷자락이 눈물로 다 젖는다.

손금을 바꿀 수 없듯 팔자에 없는 복을 어찌 불러들이리오.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온 쪽박, 어떤 이는 귀인 후사로 큰 쪽박을 지니고 태어나고, 어떤 이는 미물 후사로 작은 쪽박 지니고 태어나, 그 쪽박에 담을 만큼 현세의 없을 담다 끝내 빈손으로 내세에 들긴 마찬가진데 무엇을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김문수 - 성흔(聖痕)

- 생명보다 돈을!
이런 보이지 않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병원들이 많다는 것은 새삼스런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공연히 그 신축된 병원의 고층건물 앞을 지나면서 묘한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다.
“젠장할 뭐가 인술(仁術)이냐? 인술이라구? 하기야 술(術)은 술(術)이지! 흡혈술(吸血術)도 술術이니까⋯⋯.”

“선생님.”
“네?”
“선생님도 말씀 좀 하세요.”
기자 친구 옆에 앉은 ‘나해주’ 양의 시선이 내 얼굴에 와 꽂혔다.
“무슨 얘길 합니까?”
“아무 얘기나요. 얘길 안 하고 잠자코 계시니까 꼭 안주 같아요.”
“안주?”
“네.”
“안주라니?”
‘나해주’ 양이 대답은 않고 갑작스레 떼굴떼굴 구를 듯 웃어댔다.
“술자리에 말이 없는 건 안주뿐인가 하노라. 즉 안주는 말이 없다, 이 뜻이야.”
- 여덟 시 이십 분.
나는 이렇게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그리고 속으로 히죽이 웃어버렸다. 외사촌형의 눈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여덟 시 이십 분’은 내 외사촌형의 별명이었다. 양쪽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있는 꼴이 꼭 여덟 시 이십 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면 모두들 그의 착한 마음씨를 좋아했다. 친척들은 모두들 사람이 인덕 있게 생겼다고도 했고 복 받을 상이라고도 했다. 사실 그는 누가 보아도 인상이 좋은 그런 얼굴이었다. 여덟 시 이십 분을 가리키는 시곗바늘을 닮은 눈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세기 - 이별(離別)의 방식(方式)

아버지가 있다는 미국이 어디쯤인지 점점 더 현실감이 없어지고, 어머니가 가버린 천국이나 아버지가 가버린 미국이나 내겐 의미가 같은 고장처럼 느껴졌다.

유재용 - 두고 온 사람

곰보가 병국이를 끌다시피 하고 사무실을 나오더니 아버지 쪽을 가리키며 병국이를 떠밀었다. 병국이는 주춤거리더니 곰보의 재촉하는 눈길을 받고는 아버지를 뒤따라갔다.
“아저씨, 저, 저 품값 주세유.”
병국이가 말했다.
“품값이라니.”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물었다.
“아저씨네 집에서 이 년 동안 심부름한 품값 말이에유.”
병국이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너 요전에 사람덜 보내서 광 속에 있는 곡식 가마 다 져내가구 무슨 소리냐?”
아버지가 꾸짖듯 말했다. 병국이는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채 신발로 땅바닥만 문지르고 있었다. 곰보가 아머지한테로 달려들었다.
“이 반동분자 영감아, 그 쌀이 느이 꺼야?”
곰보는 악을 쓰며 아버지를 힘껏 떠밀었다. 아버지는 땅 위로 나둥그러졌다. 곰보는 쓰러진 아버지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밟아버려! 이 멍충이새끼야, 빨리 발루 짓뭉개노라구.”
곰보는 병국이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병국이는 마지못한 듯, 발 하나를 들어, 쓰러져 있는 아버지의 넓적다리 위로 올려놓았다. 아버지의 코와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놈으 새끼덜, 잡아 쥑에라!”
동네 사람들이 소리 지르며 몰려온 것은 그때였다. 곰보는 골목 안으로 재빨리 도망쳐버리고, 아버지의 넓적다리 위에 발 한 짝을 올려놓고 어릿어릿 서 있던 병국이를 동네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쌌다. 병국이가 옷이 갈가리 찢기고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고 땅바닥에 나자빠진 것은 눈깜짝할 사이였다.

조정래 - 유형(流刑)의 땅

“서른 계집 암내에 쉰 사내 기둥뿌리 빠질 테니 조심해.”
“암, 암, 스물 계집 고게 비지살 조개라면 서른 계집 고건 찰고무 조개야. 섣불리 꺼떡대다간 허리까지 내려앉는다구.”
노동판 험한 입들은 만석의 느닷없는 섹시 맞이를 그대로 보고 넘기지 않았다.
“요런 바르장머리 읎는 삭신들아, 염려들 말어. 안즉 아들로만 열을 뽑을 기운이 남았응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어쩌면 시나브로 세월이라는 것을 한술씩 떠 마시며 죽어가는 것인지도 므를 일이었다. 세월을 마디마디 묶어 표시해놓은 나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이었다. 마흔여덟이 다르고, 마흔아홉이 다르고, 더군다나 쉰은 더 다른 얼굴이었다. 서리 내린 다음의 나뭇잎이 하루 사이로 달라지듯 늙음으로 치닫는 나이도 다급히 변색해갔다. 한 해가 다르게 몸에서 진기가 말라가는 것이었다.

참게한테 물릴 때의 아픔은 대단한 것이었다. 눈에서 불꽃이 번쩍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지 끝이 맵게 쏘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파지는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잘려나가지는 않았다. 눈앞이 노래지며 무릎이 자꾸 꺾이는 배고픔을 없앨 수 있다면 그까짓 아픔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동하 - 폭력요법

폭력의 진면목은 어쩌면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른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 행해지는 폭력은 이미 폭력이 나니 것이다. 이른바 명분 있는 폭력 말이다. 명분이 깃발처럼 으레 앞세워지고 또 당당하게 외쳐지는 폭력들 말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다양한, 오만 가지 알록달록한 명분 아래, 또 얼마나 허다한, 크고 작은 폭력들이 염치없고 거침없이 자행되어왔는가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는 터이다. 그래서 때로는, 마치 폭력이 아니기나 한 것처럼 착각되기도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폭력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위장언 더 쉬웠다. 말하자면 전쟁이나 혁명이 바로 그랬던 것이다.

어느 날 사복경관 두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장가를 답삭 묶어간 것은 그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녀석은 달려가면서도 무시무시한 소리를 남겼다고 했다. 두고 보라, 이만한 일로 넥타이 공장으로 보내지진 않을 테니 내가 돌아오는 날까지 부디 죽지들 말고 곱게 살아다오, 운운⋯⋯.
장가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안의 씨로 남았다. 당연한 노릇이다. 그의 얼굴이 얼핏 떠오르기만 해도 등골이 써늘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딴 악질들은 굳이 죄의 경중을 따질 것이 아니라 아예 싹 치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은연중 꿈틀거렸다. 세상에 좀 더 남겨둬서 뭣에 써먹겠다는 건가. 어차피 암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다면 신속하고 완전한 제거만이 현명할 조치일 터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타인의 생에 분탕질을 할 기회를 영구히 봉쇄하기 위해 그딴 녀석은 목을 달아매든지, 전기구이를 해버리든지, 심장에 불콩을 몇 알쯤 박아넣음으로써 그놈의 무익한 펌프질을 그만두게 하든지 아, 좀 그렇게 속시원히, 야무지고 딱 부러지게 다스려주면 좋겠다고 다들 소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1956-1970 - 책갈피


손창섭 - 혈서(血書)

그러나 역시 달수는 이십삼 년 동안 을 이만큼 살아온 것이다. 악성 전염병이 그토록 무섭게 창궐한 해에도 그는 병사하지 않았고,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애매히 또 무참히 쓰러져간 6⋅25도 그는 무사히 넘겼고, 해마다 발표되는,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의 엄청난 숫자 속에도 그는 끼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준석이처럼 한쪽 다리가 절단되는 일조차 없이 지구상에 있는 이십여 억 인류의 그 누구와도 꼭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우연히 살아 있는 인간’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

김광식 - 213호 주택(二百十三號住宅)

전차 정류장, 버스 정류장에는 이렇게 거리를 지나온 사람들이 어제도, 오늘도 교외로 달리는 버스를 기다린다. 간신히 탄 전차나 버스는 발을 옮길 길이 없다. 남녀노소의 육체와 육체가 맞부딪쳐 안고, 등지고, 진동이 일어날 때마다 밀고, 당기고, 엎치고⋯⋯ 덮치고 그래도 타고 가야 하는 전차요, 버스다.

그 남편들은 그렇게도 집이 그러워설까. 늦게 돌아가면 아내가 짜증을 내는 것이 무서워설까. 배가 고파설까. 할 수 없어서 그렇게도 꼭 같은 시각에 질식하는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일까. 도심지에서 주택이 늘어선 교외로 달려가는 남편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그 하루를 온갖 정력을 기울여 일했다. 돌아가는 길에 한 컵의 술로 메마른 목을 축이지도 못하고, 숨을 돌리지 못하고 곧장 집으로 가야 하는 남편들이다. 그들은 가끔 이러한 자기 자신들을 생각하며 버스에 흔들려 간다. 그러나 김명학 씨는 오늘 사장으로부터의 사직권고의 이야기만 해석해보는 것이다.

그들 남편들 속에는 그리웠던 처와, 즐거운 저녁식사가 반가이 맞아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남편들은 따분한 주택에 아무런 사랑도,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맞아주는 아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나는 온갖 정력을 기울여 일하고 일했다. 기계와 살아왔다. 헌데 발전기와 인쇄기들은, 아니 사장은 고장의 사전 발견을 못했다고 나를 내어쫓는다. 기계나, 사람이나, 너희들은 나의 식구를 생각지 않아도 좋으냐? 사장 당신은 인간이 아닌가? 내가 고장의 사전 발견은 못했으나 고쳐놓은 것만은 사실이 아닌가. 기계란 건, 특히 전기란 전혀 예측 못하는 데 고장이 난다는 것을 기술자라면 안다. 기사는 사람이다. 사람은 고장 전에 기계의 고장을 발견하는 기계는 아니다. 사람은 기계가 못 되는 것이다. 나는 기사로서 십칠 년간 기계의 고장을 고친 사람이다. 못 고친 것이 없다. 고장이 문제가 아니고, 고장을 고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사고 전에 고장 날것을 발견하라고? 그리고 나를 면직시킨다?

“우리 이야기 좀 해보자. 자네는 아나? 오늘의 사회는 인간의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타락시켰어⋯⋯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노동을 고통으로 아는 거야.”
“이 친구가 또 갑자기 왜 이래.”
“왜 이러긴 뭐가 왜 이래⋯⋯ 사회란, 그놈의 조직이란 의무도, 약속도, 규칙도, 질서도 강제적으로 인간에게 요구해. 우리는 대등이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는 노동에서 고통을 느끼는 거야.”
“이 친구가 왜 자꾸 이래. 그런 말은 후에 하고 술이나 마셔.”
“그 따위 소린 말구, 내 말에 대답해봐.”
“그럼 하나 물어볼까. 노동이 강제적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존재하던 시대가 있었나? 미래에도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아나?”

박경리 - 불신시대(不信時代)

“천주님이 계신 이상 우리는 불행하지 않다. 천주님이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주어 너를 부르신 거야. 모든 것이 다 허망한 인간세상에 다만 천주님만이 빛이 된다.”

진영은 문득 예수 사랑할라고 예배당에 갔더니 눈 감으라고 해놓고 신 도둑질 하더라. 그런 야유에 찬 노래를 생각했다.

이호철 - 판문점(板門店)

“감은 더운 물에 넣어야 떫은 맛이 없어지지 않아요? 너무 오래 데우면 껍질이 벗겨지고 물큰물큰해지지요. 요컨대 타락의 징조라는 것도 당사자의 경우에선 적당히 감미롭고 졸음이 오듯이 고소하고 팔다리를 주욱 펴고 있는 것같이 그래요.”

“신념이 문제지요. 자유는 허풍선과 같은 허황한 것일 수가 없어요. 자유의 진가는 그 사회 나름의 일정한 도덕적 규범과 인간적 품위와 결부가 되어서 비로소 제대로 설 수 있는 거지요. 자유 이전에 정의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유는 이용만 당해요. 빛 좋은 개살구지요.”

“말쏨시가 역시 망종 냄새가 나요. 거기선 남자 구실을 하려면 그래야 되나요?”
“망종이라니, 무슨 소리야? 못 알아들을 소린데.”
“망할 종자, 이를테면 망나니, 어깨, 깡패⋯⋯.”
“그럼 꽁생원만 사낸가, 거기선?”
“천만에.”
“그럼 됐어.”

한말숙 - 흔적(痕迹)

“그만두어요. 하나님 하는 일 치고 시원한 꼴 본 일 없어요. 나도 어릴 때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도 많이 불렀지만, 가만히 보니까 자식 만들어놓고 네 힘껏 먹고 살아라. 나는 모른다는 애비 같은게 하나님입디다.”
“어허, 죄로 가오, 죄로!”
“누가 만들어달랬나, 제멋대로 만들어놓고는 날 믿으라 믿으라하니⋯⋯. 그까짓 하나님 있거나 없거나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최상규 - 한춘무사(寒春無事)

일찍이 가난을 창조하지는 않았으나 이는 창조해놓은 신의 저의는 측량할 길이 없다.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는 금방이라도 훌훌 먼지라도 털어버리듯이 그 일을 집어치우고, 저 자유의 대열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한다. 그가 기다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씩 앞당겨서 그것을 기다릴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는 기다린다. 그들 때문에 기다린다. 그들을 기다린다. 그들이 없어지기를 기다린다. 자기에게 무엇을 강요하는 타인들이 없어져버리기를 기다린다.

건강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포식요법(飽食療法), 인간은 배고플 때에만 영적(靈的)이다. 그러나 배가 부른 것은 영적인 것보다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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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의 여왕. 데프니 듀 모리에 단편선.


지금 쳐다보지 마.
새.
호위선.
눈 깜짝할 사이.
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
푸른 렌즈.
성모상.
경솔한 말.
몬테베리타.

이렇게 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긴 데프니 듀 모리에 단편선을 읽었다.
장면과 심리묘사가 참 좋다.
일상속에 스며든 이야기로 누구든 그녀 소설 속 주인공이 될법하다.
밤에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다가 보면 이런 생각이 한번은 떠올려 봤을 것이다.
'어쩌면? 이 골목엔….'
데프니 듀 모리에는 바로 그 부분에서 이야기를 확장하기 때문에 빠져들어 읽게 된다.
섬뜩한 일이 일어나도 지나치게 호들갑 떨지 않고, 침착하게 해결해 보려는 등장 인물들이 인상적이다.

몬테베리타는 단편이라고 하기엔 긴 분량의 소설인데 다른 여덟 편의 소설과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이상에 다다른 사람.
이상을 동경하는 사람.
이상을 좇는 사람을 따르는 사람.
욕망과 집착.
내려놓음.
내용이 지루하다고 느끼고 책장이 더디게 넘어갈 즈음 두건을 벗는 애나.
그 장면 하나로 이 소설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가 이상을 좇을 때 밝은 부분만 바라보게 되는데, 빛이 비추는 곳엔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 소설이 다시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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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롯가의 옛이야기처럼 빨려드는 모옌 중단편선.


소설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아니 딱히 소설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편이 맞겠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지는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좋고,
콘텐츠와 상호작용을 하는 게임도 좋다.
소설에서 눈에 보이는 건 글자 뿐이기에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
이 부분이 다른 시청각 콘텐츠에는 없는 소설만의 특별한 재미다.
모옌.
그의 글에서는 소리가 들리고, 생생한 장면이 펼쳐진다.
모옌은 묘사가 너무 뛰어나서 독자가 다른 엉뚱한 상상을 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궁금한 부분만은 상상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서,
독자가 단 한 부분에 집중해서 상상하도록 우리를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그가 쓴 소설 한 편을 읽고 나면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이 몽롱하다.
모옌.
글 참 잘 쓴다. 스토리텔링의 고수다.

모옌 중단편선 - 책갈피

허우치가 개기 일식이나 헤일 봅 혜성은 이미 작년에 있었던 일이 아니냐고 말하자 동료들은 멍청이라고 말하면서 도무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작년에 일어난 일이라고 올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그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허우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멍청하고 둔하며, 근본적으로 날로 비약하는 사회에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말았다. 허우치가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자 멜빵바지 차림에 상반신이 유별나게 길지만 다리는 오히려 유난히 짧은 여자가 그에게 먹으로 까맣게 칠한 유리를 건네면서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허우 동지는 그래도 근본은 올바른 동지야. 당신들이 욕하면 안 되지!"
청년들이 말했다.
"우리가 욕하는 것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소, 허우 동지?"
허우치는 연신 그들의 말이 맞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어서 외계인에 대해 큰 소리로 토론을 벌였다. 허우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마치 술에 취하거나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 청안대로 위의 나귀 타는 미인

진정한 미인이란 그저 감상의 대상이지 껴안고 노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진정한 미인은 언제나 깡패나 건달, 못난이들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속담에 이르길, 훌륭한 사내대장부는 좋은 아내를 얻기 힘들고, 게으른 사내가 미녀를 얻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그렇다! 진주 목걸이는 모두 돼지 목에 걸려 있다.
- 청안대로 위의 나귀 타는 미인

"너희 인생이 잘나간다고 우리 인생은 찌그러졌는 줄 알아? 쌀 먹는 사람도 살지만 쌀겨 먹는 사람도 살고, 고급한 인간도 살아가겠지만 저급한 인간도 살게 되어 있어." - 백구와 그네

무슨 일이든 하려면 잘해야 하고 정성을 다해야지, 일을 하면서 잡생각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할아버지의 철학이었다. - 큰바람

화피자(話皮者) : 여우나 들고양이가 요괴로 둔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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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를 다룬 짧지만 강렬한 소설. 너희 모든 좀비들.

<너희 모든 좀비들>은 지금 극장에 상영되는 타임 패러독스 (Predestination)의 원작이 되는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Robert Anson Heinlein)의 단편 소설이다. ‘휴식’이라는 단어와 이야기는 잘 어울린다. 만화책도 좋고, 누군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도 좋다. 이렇게 추운 날은 이불에 들어가서 눈과 코만 내놓고 따뜻한 물주머니로 전해지는 온기를 발가락으로 빨아들이며 한줄 씩 읽어 내려가는 소설도 좋다. 안타깝게도 요즘엔 그런 호사를 잘 누리지 못해서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날아다니는 <너희 모든 좀비들>글씨를 낚아채서 눈으로 쏟아 부었다. 눈으로 들어온 글씨는 곧바로 뇌로 전달되지 못하고 관자놀이를 오가며 멀미를 일으키다가 천천히 뇌수로 스며들었다.
<너희 모든 좀비들>에서 던지는 질문 하나.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 그러나 당신들. 좀비들은 대체 어디서 왔나?’
나는 수많은 독자중 한 명일 뿐일 테지만, 저 복수형 질문이 머릿속을 자꾸만 맴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몇 번을 물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계속 묻고 답한다면 더 예리하게 파고드는 질문이 나오겠고, 더욱 자세한 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답을 찾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답이 있는 방향대로 행동하도록 몸에 익히는 일이다. 생각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저 공상에 그칠 뿐이니까.
요즘은 생활에 균형을 좀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이 168시간이니 56시간은 자고, 16시간은 먹고, 56시간은 놀고, 40시간은 일하자. 균형을 잡자. 그런데 자꾸만 일에 신경이 쓰이고 70시간도 넘게 일에 신경 쓰며 한 주 한 주가 흐를수록 균형이 깨진다. 물론 개발이 놀이와 일의 경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뭐든 적당히 즐겨야 좋다. 돌이켜보면 삶의 균형이 깨지지 않았을 때 집중이 훨씬 잘 되었다. 더 적은 시간 신경 쓰고 시간을 들여서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요즘엔 녹슨 대팻날 마냥 열심히 긁어봐도 나무는 깎이지 않고 턱턱 막힌다. 행동이 민첩하고 날렵하지 아니하고, 괜히 정신만 사납고 날카롭다.
균형을 잡자.
수 십 년전에 쓰여진 이런 보물 같은 소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재미난 글도 읽고 웹툰도 보고 새소리도 듣고 맑은 공기도 마시자.
<너희 모든 좀비들>을 읽고 심각한 감상에 빠져들 게 아니라, ‘ㅋㅋㅋ 좀비도 때론 좋지.’라고 가볍게 웃고 넘길 여유를 찾자.

너희 모든 좀비들
재미난 소설이고 새해 다짐도 새롭게 다지도록 도와준다.
짧으니 전철이든 흡연실이든 어디서든 읽어보자. 버스는 빼고. 버스에선 멀미난다.

너희 모든 좀비들 한글 번역본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327/read?bbsId=G005&articleId=17421478

All you zombies

http://faculty.uca.edu/RNovy/Heinlein--All%20you%20zombi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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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를 위한 소설 창작 기법.

온종일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고작 열 마디 정도인 날이 있다. 아니, 꽤 많다. 그래서 누군가 오랜만에 전화통화라도 할라치면,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파?’ 소리를 듣는데, 그건 종일 말을 하지 않아 목이 잠겼기 때문이다. 목이 잠기면 목소리가 탁하고 이상하게 들리듯,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블로그 포스팅도 한참 만에 쓰면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거나, 글을 많이 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아무렇게나 마구 내뱉는 말은 심신을 피곤하게 하고, 설사하듯 써질러 놓은 글은 멀미를 일으키는 까닭이다. 이런 일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오늘은 Startup Nations Summit이라는 행사에 다녀왔다.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부터 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 멤버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했다. 누가 이야기를 하면 집중이 잘 되고, 어떤 사람 말에는 괜히 시계가 보고 싶어졌다. 자꾸 시간이 궁금하게 만드는 연설자는 대체로 기술자였는데, 사실을 서사적으로 나열하며, 너무 많은 숫자를 보여주었다. 종종 혼자서 감동에 빠졌으나 그것을 청중과 나누진 않았다.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보만 있고 스토리는 없었다. 중요 점이 지나치게 많아서 모두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Edward Jung(Intellectual Ventures)의 폐막식 연설만은 예외로, 소개에 CTO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모를 만큼 매끄러웠다. 그럼 흥미를 잡아끄는 연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중요 키워드는 정말 중요한 몇 개 뿐이다. 자신만의 스토리 라인을 구축하여 이야기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이며 집중도가 높을 때 키워드를 강렬하게 던진다.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고 한 마디로 이해시킨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신생 기업이지만, 반년 만에 IPO를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약을 판다. 그래프 추이는 어떻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이를 극복했고 앞으로는 이럴 전망이고 어쩌고 이성적인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꿈을 판다. 상상할 여지를 준다. 자신의 메시지를 보기 좋게 포장하고, ‘자,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완전 멋지죠? 이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거에요.’라고 청중과 꿈을 나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은 모두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다. 짧은 메시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공감 가는 이야기로 감성을 자극하면 효과적으로 메시지 전달된다. 물론 두 가지를 적절히 섞어 쓰면 더 좋다.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 속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짧은 메시지를 잘 배치하는 것이다. 수필은 직설적이고 강렬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소설은 세련되고 부드럽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술로 치자면 수필은 막걸리고, 소설은 그를 증류한 소주다. 솜씨 좋은 양조장에서는 그게 막걸리건 소주건 다 잘 만들지만, 막걸리보다는 소주가 손이 많이 간다. 소설도 그렇다. 소주를 만들려면 밑술을 끓여 소줏고리에 맺힌 술을 받아낸다. 그럼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나? 지난 삼 개월간 들었던 창작클럽 강의를 정리해 보았다.


소설, 어떻게 써야 하나?


캐릭터

  • 사건‧상황에 대한 캐릭터의 반응을 보여준다. 반응을 보이지 않고 너무 차분하거나 너무 쉽게 받아 들이면 공감이 가지 않는다.
  • 캐릭터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글 곳곳에서 보여준다.
  • 다양한 성격을 둔다. 한 집단(착한 집단 혹은 악한 집단)만 존재하면 단조롭다.
  • 성격을 자세히 설정한다. 예를 들어 악인이라면 정당성 있는 악, 순수한 악, 내면은 선하지만 상황에 의한 악. 등으로 세분화 한다.
  • 캐릭터를 연구할 때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감정이입을 하여 캐릭터와 나를 동일시해 본다.
  • 캐릭터의 행동엔 이유가 있다.
  • 스스로 사건을 만드는 캐릭터는 대체로 악인이 많다.
  • 조연은 간략히 묘사한다.
  • 궁금하게 만든다.
  • 초반에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어야 공감이 되어 몰입한다.
  • 캐릭터간 관계가 지나치게 복잡하여 관계도 그리는데 신경을 쓰도록 하면 안된다.
  • 어떤 큰 경험을 하는 인물을 화자로 두면 집중이 잘 된다.

사건

  • 장황한 설명 보다 극적인 사건이 효과적이다.
  • 중요한 사건에 집중한다. 강렬한 사건도 너무 자주 일어나면 무뎌진다.
  • 중요한 사실을 먼저 알려준다.
  •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장면을 보여주기 전에, 사건의 전조를 미리 노출 시키고 서서히 발전시켜야 한다.
  •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를 통해 등장인물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를 보여준다. 게임으로치면 ‘퀘스트를 완료하면 보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기술

  • 장면과 장면을 부드럽게 이어간다.
  • 완급 조절을 한다. 문장 중에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시간을 끌지 않고 지나간다.
  • 문장이 너무 길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문장을 쓰기 어렵다면 너무 긴 문장은 삼간다.
  • 현상을 포착하고 나의 세계관을 결합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나의 일상과 다른 사람의 일상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독자가 글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것과 교집합이 있는가?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 흥미로운 소재에만 빠지는 ‘소재주의’에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소재주의에 빠지면 나의 시선을 잃어버리고 소재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 흔한 소재를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담아야 한다.
  • 뛰어난 묘사와 등장인물의 심층 취재. 중간 중간 드러나는 캐릭터의 심리. 강렬한 마무리가 잘 조화된 작품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 단어‧용어를 글의 배경에 어울리도록 잘 선택한다.
  • 서사 구조는 플롯이 탄탄히 잘 짜여진 구조와,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읽고 보면 필연인 작가의 의도가 보이는 구성이 있다. 후자는 성장물에 주로 쓰인다.
  • 서사 구조를 짤 때 그래프를 그리면 도움이 된다.

그 밖의 조언

  •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답이 없는 작품은 안된다.
  • 계간지, 문학동네, 신춘문예 당선집 등을 읽으면 객관성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 주제의 추세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소설만이 아니라 다른 컨텐츠로 변화시킬 만한 여지를 두면 좋다.
  • 누가 어떤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듯이, 같은 주재라도 문체에 따라 독자에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 희곡은 장소가 한정적이라 등장인물을 연구하고 묘사하는 연습에 좋다.(등장인물간의 갈등‧ 내면 묘사 등)
  • 서사구조는 독자의 흡입력을 높여주고 다른 장르로 변했을 때 관객의 몰입을 돕는다.
  • 작가들 사이에서 ‘바래난다.’라는 독특한 용어가 ‘중요한 어떤 것이 노출되다.’라는 뜻으로 사용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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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옴니버스 영화는 철저히 기획해서 제작한다.
감독을 먼저 컨텍하고 그에 맞는 작가를 모집한다.

어떤 지역을 배경으로 선택할 때는 그 지역의 특징을 잡아서 작품에 녹여내야 한다.

만약 주인공을 소심한 인물로 설정했다면,
그걸 빨리 깨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소설


무엇을 쓸까?

1차적 발상 :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등장인물을 통해서 보여준다.
2차적 발상 : 나와 시대와의 접점을 찾아낸다.


2차적 발상 소설을 쓰려면?

  1. 신문‧시사고발을 보고 인물 하나를 뽑는다.
  2. 그 인물을 객관화 한다.
    (과도한 감정몰입은 피한다.)
  3. 결론이 사회 비판으로 가면 안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로 가야 한다.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나는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내가 바라보는 인간은 어떤 것인가?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

내가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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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와 소설은 어떻게 쓰는가?

시나리오

사건을 먼저 잡는다.
그리고 주인공의 행동이 사건에 따라 일어난다.
요즘엔 복합물이 많지만, 원형을 먼저 파야 한다.
산만하지 않게 주제에 집중한다.

캐릭터를 살리는 방법

  • 사건이 생겼을때 그 사건에 대응하는 모습
  • 대사 (쓰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스릴러

긴장감, 관객과의 머리싸움(속임수)
참고할만한 작품 : ⌜히치콕⌟

멜로‧로멘스

원형을 파되, 최근의 추세 트렌드하고 결합한다.
드라마를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참고할만한 작품 : ⌜귀여운 여인⌟ ⌜러브어페어⌟

코미디

미국식 코미디는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
참고할만한 작품 : 채플린의 작품

시나리오 공부에 좋은 영국 드라마

  • 셜록
  • 루터
  • 삼총사
  • 화이트 채플
  • 브로드 첮치
  • 마이 매드팻 다이어리


소설

나의 또다른 자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지만 못하는 행동을 주인공이 해낸다.
과정 중에 어려움을 겪으며 해결하는 카타르시스를 그려낸다.
나와 또 다른 자아 사이에는 판타지가 있어야 한다.
직업이 다르거나 처한 상황이 다르거나 나와 다른 요소를 가미한다.
자기를 투영하는 등장인물이라고 해도 자기연민은 버려야 하고,
나의 어려움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연민을 걷어내라!
어떤 소재만으로는 소설이 되지 못하므로,
그 소재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하여 소설로 쓴다.
독자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을’ ‘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니,
그 답을 먼저 주고 그 다음에 ‘어떻게’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도 괜찮다.
유럽에서는 기본적으로 철학 교육이 되어있기 때문에
‘무엇을’과 ‘왜’를 생략하고 ‘어떻게’로 바로 들어가는 소설도 많다.
묘사를 너무 살리기 보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글로 일일히 장황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영향력 있는 상황으로 보여준다.
장면의 전환에는 새로운 소재를 가미하면 신선하다.
등장인물이 일상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런 계기가 없는 갑작스러운 결말은 혼란스러우니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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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고전.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작년에 친구네 막걸리 한 사발 하러 갔다가 취기에 소설책 한 권을 빌렸다. 사고 싶던 책인데 다섯 권을 묶어서 아주 저렴하게 팔아서 냉큼 샀다는 거다. 3분의 1쯤 읽고 쉬고 있다는 말에 금방 읽고 준다며 빌려와서 거의 일 년 만에 돌려줬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 큰 교훈을 얻었는데, 만화책이 아니라면 합본은 절대 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두꺼워서 들고 다니기가 어려우니 집에서만 읽어야 한다. 팔이 아파서 들고 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지금껏 소설을 읽다가 팔이 아프긴 처음이었지 싶다.
어찌 보면 팔운동과 독서를 함 하는 최고의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위안으로 책을 읽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다 읽었어도 팔 근육은 전혀 발달하진 않았지만, 안면 근육은 확실히 발달했다.
웃을 일이 많기 때문이다.:D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더글라스 애덤스가 존경스럽다. 6권은 이오인 콜퍼라는 아일랜드 작가가 썼는데, 이름만 같은 다른 소설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꽤 재미있는 편이지만, 웃기는 방법이 다른 시리즈와 전혀 다르다. 더글라스 애덤스와 이오인콜퍼가 닮은 점이라면 둘 다 말장난의 대가라는 것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웃기기도 하고 무작정 웃기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하게 웃기기도 한다. 아무튼, 웃기다. 풍자와 재치 넘치는 이야기로 책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는 총 여섯 권으로 대체로 재미있다.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 우주 끝에 있는 레스토랑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the Universe)
  •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 대체로 무해함 (Mostly Harmless)
  • 그런데 한 가지 더 (And Another Thing...) - 이오인 콜퍼

재미도 재미지만 인생의 답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그 이유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엔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해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삶은 무엇인가?’
‘우주는 왜 생겨났는가?’
이런 궁금증을 가져봤던 사람이라면 이 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깊은 생각이라는 엄청난 슈퍼컴퓨터가 몇 세대에 거쳐 계산해야 나오는 답인데,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지 구글도 답을 알고 있다.
구글 검색창에 ‘the answer to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이라고 치면 이 엄청난 질문에 대한 해답이 튀어나오는데,
혹시 심장이 약하다면 검색 전에 우황청심환을 한 알 먹어두는 편이 좋다.

시리즈-'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책갈피


인간은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 이론 역시 단념했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냉소주의도 포기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인간들을 꽤 좋아한다고 결론지었지만, 이들이 모르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지독하게 걱정스러웠다.

뿌연 안개에 싸인 저 과거의 옛 시절, 전대(前代) 은하 제국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시절에는 인생은 멋지고 풍요로웠으며 대략 면세였다.

아서는 눈을 껌뻑이며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게 무엇인지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우주선에는 홍차가 없나?"그가 물었다.

그는 열까지 세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지각 있는 생명체들이 이것마저 영영 잊어버리지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됐다. 숫자를 세는 것만이 인간이 컴퓨터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난 제멋대로야.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면, 여어, 못할 거 뭐 있어, 하고는 해버리지. 은하계의 대통령이 되어야지 생각하면 그대로 돼버리는 거야. 쉽다고. 이 배를 훔치자, 마그라테아를 구경하자, 하고 결심하면, 모두 그대로 되는 거야. 물론 어떻게 하면 가장 잘할 수 있을까 하고 계획을 꾸미는 것은 사실이애. 그래, 하지만 언제나 쉽게 잘 된다고. 마치 은하 신용 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한 번도 지불 수표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계속 사용이 가능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고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지?', ' 그 방법을 어떻게 생각해냈지?'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려 할 때마다 그 생각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되지. 지금처럼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해도 너무 힘이 들어."

마치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가 여자의 남편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했는데 그 남편이라는 자가 바지를 갈아입더니 날씨가 어쩌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말만 몇 마디 건네고 그냥 다시 방에서 나가버리는 일을 당한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 법률에 의하면, 궁극적인 진리 탐구는 사상가들의 양도할 수 없는 특권이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소. 어떤 빌어먹을 기계가 정말 진리를 찾아내 버리면, 우리는 당장 실직자가 된단 말이오. 안 그렇소?

그는 아서에게 마치 스테고사우루스 공룡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의자 쪽으로 오라고 손짓해 보였다.
"그 의자는 스테고사우루스의 갈비뼈를 뽑아 만든 거라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나?" 푸흐그가 헐떡였다.
"정말 한 가지 해답이 있습니다." 깊은 생각이 확인해주었다.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그 엄청난 질문에 대해서?"
"그렇습니다."

"말해줘!"
"그러죠." 깊은 생각이 말했다. "위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해답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
"해답은……!"
"그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을 멈췄다.
"해답은……!!!"
"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왜냐하면, 굉장히 지성적이고 꽤 재미있고 또 인간적인 이야기를 할 거니까! 자, 너희가 항복하고 나와서 우리한테 때릴 기회를 주든지…… 물론 우리는 쓸데없는 폭력에는 반대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때리지는 않을 거지만……아니면, 우리가 이 행성 전체를 날려버리고 가는 길에 눈에 띄는 한두 개를 더 날려버리게 하든지 선택해라!

은하계의 모든 주요 문명은 다음과 같이 뚜렷하고 확연한 세 단계를 거친다. 즉 생존, 의문, 그리고 세련의 단계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왜, 그리고 어디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단계를 특징짓는 질문은 '어떻게 먹을까'이고, 두 번째 단계는 '우리는 왜 먹는가'이고, 마지막 단계는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이다.

나는 죽었기 때문에 알지. 죽음이라는 건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놀라운 혜안을 주거든. 여기 명부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생명은 산 자들에게 쓸데없이 낭비되고 있다.

오래전, 이곳은 대단히 번창했고, 행복한 행성이었습니다. 사람들, 도시들, 가게들이 가득한 정상적인 세상이었죠. 이 도시들의 번화가에 좀 필요 이상으로 구두 가게가 많았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그런데 이 구두 가게들의 수가 서서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늘어난 겁니다. 그건 아주 널리 알려진 경제 현상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 보는 건 참 비극적이었죠. 즉, 구두 가게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 많은 구두를 만들어내야 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구두들은 점점 더 질이 나빠지고 신을 수 없는 구두가 되었고, 구두의 질이 안 좋아질수록 신발을 신고 다니기 위해선 점점 더 많은 구두를 사야만 했죠. 그래서 신발 가게는 더 늘어만 갔고, 결국 전 경제는 신발 파동 수평선이라 불리는 선을 넘어버린 겁니다. 그 시점이 되면 신발 가게 외에 다른 것을 만드는 것이 경제학적으로 불가능해져버리죠. 그 결과는 파국과 폐허, 기근이었습니다.

당신은 그저 자기 시대에 예금 통장에 일 페니만 저금하면 된다. 시간이 끝나는 날에 당신이 도착하면, 복리(複利) 작용에 의해 엄청난 식사 비용은 이미 지불이 되어 있을 것이다.

포드는 팬 갈랙틱 가글 블래스터를 한 잔 더 마셨다. 이 술은 강도(强盜)의 술 버전에 해당되는 술이라고 회자되는 술이다. 즉, 대가가 값비싸고 머리가 빠개진다.

"난 자기를 먹어달라고 청하는 짐승을 먹고 싶진 않다고. 냉혹한 짓이야." 아서가 말했다.
"먹히고 싶어 하지 않는 짐승을 먹는 것보단 낫지." 자포드가 말했다.

예술의 기능은 자연에 거울을 들이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 큰 거울은 없다.

고(故) 핫블랙 데지아토 씨가 그의 보디가드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통로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이쯤에서 포드가 지구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특이한 버릇에 대해 정립했던 이론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게 좋겠다. 그가 보기에 지구인들은 너무너무 명백한 사실들을 계속해서 말하고 또 말하는 괴상한 버릇이 있었다. '아, 좋은 날씨로군'이라든지 '키가 상당히 크시군요'라든지 '그래서 이걸로 끝이군, 우리는 죽는 거야'같은 소리들 말이다.
그의 첫 번째 이론은,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해서 입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입은 시들어빠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몇 달간 관찰한 뒤 그는 두 번째 이론을 내놓았다. '만일 지구인들이 계속 입술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계획은 이런 거였어요. 첫 번째 우주선인 A 방주에는 뛰어난 지도자들, 과학자들, 위대한 예술가들, 뭐 그런 성공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타고, 세 번째 우주선인 C 방주에는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물건을 만들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탔죠. 그리고 B 방주에는---그게 우리 우주선이죠---그 밖의 사람들이 탔어요. 중간치들 말이에요.

내가 어찌 알겠어요? 과거란 현재의 나의 육체적 감각과 마음 상태 사이의 괴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구일지도 모르는데.

"좋아요. 그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죠? 당신이 잘해준다는 걸 그 녀석이 아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친절이라 생각하는 그걸 저 녀석이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자니우프가 자기의 주장을 밀어붙이며 말했다.
"물론 모르죠."그 사람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전혀 몰라요. 고양이처럼 보이는 대상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했을 때 내 기분이 좋을 뿐이죠. 당신은 다르게 행동하나요? 하여간, 이제 난 피곤한 것 같아요."

"우선 먹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 보면 어떨까?" 아서가 말했다.
"아마 그게 바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일 거야."
"좋아, 그럼 이렇게 생각해봐……."
"아직까지는 괜찮게 들리는데."
"저 과일은 우리가 먹으라고 저기 있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 우리 배를 불려줄 수도 있고, 독으로 우리를 죽일 수도 있어. 만일 저게 독이 든 건데 우리가 안 먹는다면,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 할 거야. 우리가 먹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쨌든 지는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맘에 들어. 그럼 하나 먹어봐."

다른 사람의 문제(Somebody Else’s Problem)
SEP라는 건, 우리가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는, 우리 뇌가 못 보게 하는 광경이야. 왜냐하면 다른 사람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SEP의 뜻이 그거야. '다른 사람의 문제.' 뇌가 그 부분을 편집해 잘라내기 때문에 눈에 안 보이는, 맹점 같은 거라고.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는 경우에는 똑바로 쳐다보면 보이지 않아. 유일한 희망은 곁눈질로 어쩌다 재수 좋게 힐끗 보게 되는 거지.

식당의 구역 내에서 식당 청구서에 적히는 숫자들은 식당을 제외한 우주의 다른 구역에서 다른 종이 위에 적히는 숫자들이 따르는 수학적 법칙들을 전혀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단 한 가지 사실이 전체 과학계를 폭풍처럼 초토화했으며, 과학 전체에 완벽한 혁명을 몰고 왔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수학 학회들이 훌륭한 식당에서 열리는 바람에, 당대 최고의 지성들 중 많은 이가 비만과 심장마비로 죽어나갔고 수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 몇년씩 뒷걸음질을 쳤다.

이 쓰레기 같은 건 안 봐도 돼요. 그저 고개만 끄덕이지 마시오. 그러면 괜찮아.

이 치들은 뭘 믿냐 하면…… '평화, 정의, 윤리, 문화, 스포츠, 가족 생활,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말살'을 믿는다고 하는군요.

그는 검은 바지에, 배꼽 비슷한 데까지 단추를 풀어 젖힌 검은 실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싸움은 ‘스트리테락스 행성의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몹시 잘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워낙 잘하는 일이다 보니 싸움을 아주 많이 했다. 적들(즉, 다른 사람들 모두)과 싸웠고, 자기네끼리 서로 싸웠다. 그들의 행성은 철저히 폐허가 되었다. 행성 표면은 버려진 도시들로 가득 찼고, 주위는 버려진 무기들이 가득했으며, 그 주위에는 또 사일라스틱 갑옷 악마 종족이 살면서 시시한 일들로 서로 싸워대는 깊디깊은 벙커들이 있었다.
이 종족과 싸우려면, 제일 좋은 방법은 그냥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누가 태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심지어 몹시 비위 상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이 종족이 성이 나면 꼭 다치는 사람이 생겼다. ‘인생을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산담’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종족은 정력이 어마어마하게 샘솟았던 모양이다.

“핑!” 자포드가 말했다. “피유우우우우우! 빵빵빵!”
“이봐요.” 컴퓨터가 일 분 후 명랑하게 말했다. “당신은 삼 점을 받았어요. 이제까지의 최고 점수는 칠백오십구만 칠백오십구만 칠천이백…….”

그는 새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들의 대화가 기가 막히게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개가 바람의 속도, 날개 길이, 체력과 무게의 비율에 대한 것이었고, 나아가 상당 부분이 딸기에 대한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일단 새의 말을 배우게 되면 머지않아 허공에서 새의 말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저 무의미한 새들의 수다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피해 도망갈 데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해가 일찍 저물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춥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그맘때는 그게 정상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건 더더구나 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 우주선 한 대가 착륙했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청구서는 상당히 길었다.
맨 아래에는 오디오 세트 밑바닥에 새겨진 제품 번호와 비슷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등록을 하려고 베껴 쓰는 데 몹시 오래 걸리는 그 일련 번호들 말이다.

“구즈나…….” 포드 프리펙트가 말했다. 이건 뭔가 말은 하고 싶은데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그가 잘 쓰는 베텔게우스 행성어였다.

“이봐요, 당신도 그때 그 사건은 다 기억할 거 아뇨. 환각 말이에요. 사람들은 다 CIA가 전쟁에 마약을 사용하려고 실험을 했다든가 뭐 그랬다고 합디다. 다른 나라를 진짜로 침략하는 대신, 사람들이 침략당했다고 믿게 만드는 게 훨씬 비용이 저렴하다든가 뭐 그런 미친 이론이었지요.”

사브는 분노로 이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서는 떠나는 자동차 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꼬락서니는 마치 오 년 동안 자신이 장님이 된 줄 알고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너무 큰 모자를 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달은 물기를 촉촉이 머금은 채 하늘에 떠 있었다.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나온 종이 한 뭉치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다림질을 해야, 간신히 그것이 쇼핑 목록인지 오 파운드 지폐인지를 분간할수 있는 그런 꼬깃꼬깃한 종이들 말이다.

그는 BBC에 전화를 걸어서 팀장에게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서 덴트입니다. 저, 육 개월 동안 결근을 해서 죄송한데요. 그동안 제가 좀 돌았었어요.”
“오, 걱정할 것 없네. 아마 그런 일일 거라고 생각했었지. 여기서는 늘 있는 일이니까. 그럼 언제부터 다시 출근할 수 있나?”
“고슴도치들이 동면을 시작하는 게 언제죠?”
“아마 봄쯤일걸.”
“그때쯤 뵙죠.”
“좋았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과잉 체지방을 황금으로 바꾸는 법을 발견했어.”

“그대의 땋아 내린 머리카락들이 모조리 풀려 / 한 올 한 올이 빳빳이 서리라 / 불안한 고슴도치의 가시들처럼”

“아주 굉장히 특별한 이유로 당신이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당신은 모르지만, 나도 그쪽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고 말이죠. 하지만 갈 길이 겨우 오 마일밖에 남지 않은 데다, 내가 멍청한 바보 천치라서 화물 트럭에 치이지 않고는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아주 중요한 말을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 모든 게 다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그러면 내가…….”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앞을 봐요!”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이런 망할!”
그는 수백 대의 이탈리아 세탁기들을 싣고 있는 독일 화물 트럭 측면에 충돌하는 사태를 간신히 면했다.
“내 생각에는…….” 그녀는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이렇게 말했다.
“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저한테 뭐 마실 거라도 한 잔 사셔야 할 거 같네요.”

영국에는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특유의 정서가 있다. 바로 샌드위치를 어떤 식으로든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이고 먹을 때 기분좋게 만드는 것은 죄악이며, 그건 오로지 외국인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생각이다.
‘되도록 말라빠지게 만들라’는 게 집단적인 국민 의식에 깊이 박혀 있는 요리 수칙이었다. “되도록 고무처럼 만들어라. 햄버거를 굳이 신선하게 보관해야 한다면, 일주일에 한 번씩 물로 씻도록 하라.”

햇살이 옥상의 정원들에 내리쬐었다. 건축가들과 배관공들의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변호사들과 강도들 머리 위에도 내리쬐었다. 피자 위에도 내리쬐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명세서 위에도 내리쬐었다.

그도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해변을 따라 달리는 도요새가 몇 마리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모래 속에 묻어둔 먹이가 방금 파도에 쓸려갔는데, 발이 물에 젖는 건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도요새들은 굉장히 똑똑한 스위스 사람들이 만든 기계처럼 괴상하게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쑤시개의 중간 부분을 손으로 잡는다. 뾰족한 부분을 입 속에서 촉촉하게 적시도록 한다. 이빨 사이의 공간에 삽입하고, 뭉툭한 부분을 잇몸에 대도록 한다. 부드럽게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을 반복한다.”
“그러니까.” 정신 멀쩡한 윙코가 말했다. “이쑤시개 상자에다가 사용설명서를 붙일 만큼 제정신을 잃어버린 문명이라면, 그런 문명 속에서 더 이상 우리가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투표를 해서 도마뱀을 뽑았단 말이야?”
“오, 그럼.” 포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서는, 다시 큰 걸 하나 터뜨리기로 작정했다. “왜?”
“왜냐하면 도마뱀들한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잘못된 도마뱀이 정권을 잡을까 봐 그렇지.” 포드가 말했다.

그들은 경이에 차서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바라보았고, 천천히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궁극적으고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펜처치가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그녀가 말했다. “저거였어요.”
그들은 족히 십 분 동안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그제야 두 사람의 어깨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마빈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봇은 이제 더 이상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아직 메시지를 읽지도 못했다. 그들은 마빈의 고개를 들어 올려주었지만, 그는 자신의 사각 회로가 거의 다 망가졌다도 투덜거렸다.
그들은 동전을 찾아서 그를 부축해 유료 망원경 앞으로 데리고 갔다. 마빈은 투덜거리면서 그들을 욕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마빈이 글자 하나 하나를 차례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첫 번째 글자는 ‘불’이었고, 두 번째 글자는 ‘편’이었고, ‘을’이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는 한 칸이 떨어져 있었다. ‘끼’다음에는 ‘쳐’. 마빈은 잠시 쉬고 휴식을 취했다.
몇 분 후 그들은 다시 글자를 읽기 시작했고, 마빈이 ‘드’, ‘려’까지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음 글자는 ‘서’였다. 마지막 단어가 길어서, 마빈은 그 단어에 도전하기까지 한 번은 더 쉬어야 했다.
그 단어는 ‘죄’로 시작했고 다음에는 ‘송’이었다. 그리고 ‘합’.
마지막으로 숨을 돌린 후, 마빈은 힘을 내어 마무리에 도전했다.
그는 ‘니’라는 글자와 마침내 ‘다’를 읽었고, 휘청거리며 아서와 펜처치의 품에 쓰러졌다.

“이 바다 밑바닥에 침몰한 배가 당신이 백 퍼센트 침몰 안 한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다고 말했던 그 배가 맞다고 백 퍼센트 장담한단 말이죠?”

현재가 정말로 궁핍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그리고 그 이유가 저 이기적인 미래의 약탈꾼 녀석들이 똑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나서야, 모든 사람들은 모든 아오리스트 막대 하나하나와 그걸 만드는 끔찍한 비법이 완전히, 영구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는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손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물론 자신의 할아버지의 손자들, 자기 손자들의 할아버지를 위한 것이었다.

사실 빛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다.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여행하는 것은 없다. 나쁜 소식 정도라면 예외가 될 수 있을까. 나쁜 소식은 자신만의 특별한 법칙을 따르는 법이다.

“인생을 살면서 제가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트리시아가 말했다. “절대로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라는 거예요.”

조그마한 플라스틱 렌즈를 눈에 살살 집어넣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가방을 가지러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때가 있고 그래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두 가지 경우를 구분하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들을 지나쳐갔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너무 말쑥하게 단장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너무나 죽어 있었다. 저 멀리 자기가 아는 사람을 본 겉 같아서 인사를 하려고 달려가 보면, 항상 뭔가 다른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위압적이고 결단력 있는 모습의 사람이었다.

“그건 하나의 미래죠.” 할이 말했다. “당신이 그걸 받아들이면, 그건 당신의 미래에요. 당신은 다차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순간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 헤어릴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이 뻗어나가고 있다고요.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그리고 또 지금 이 순간에서부터. 수십억 개의 미래들이, 매 순간마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겁니다! 가능한 모든 전자들의 가능한 모든 위치가 급속히 증대하면서 수십억 개의 가능성으로 변하는 거죠! 수십억 개, 그리고 또 수십억 개의 반짝거리며 빛나는 미래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방의 왼쪽 편에서는 은하계 전역에서 현장 연구자들이 보내는 보고서들이 서브-에서-넷에 모아져서 곧바로 부편집자들의 사무실 네트워크로 입력되었고, 거기에서 괜찮은 부분은 몽땅 비서들에 의해 잘리게 된다. 왜냐하면 부편집자들은 점심식사를 하러 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원고는 법무 팀이 있는 건물의 나머지 반쪽――에이치 모양 건물의 다른 한쪽 다리 말이다――으로 쏘아 보내진다. 법무 팀은 남은 원고 중에서 아직 조금이라도 괜찮은 부분을 잘라낸 뒤, 중역 편집자들의 사무실로 다시 날려 보내는데, 그들 역시 점심 먹으러 나가고 없다. 그래서 편집자들의 비서들이 그걸 읽어보고는 시시하다고 말한 뒤 대부분의 남은 원고를 잘라내 버린다.
편집자들 중 누군가는 마침내 점심식사를 마치고 비틀거리며 들어오면, 그들은 이렇게 소리 지른다. “X――X는 문제의 현장 연구자의 이름이다――가 젠장맞을 은하계 반대편에서 보내온 이 시시껄렁한 잡소리가 다 뭐하자는 거야? 이 매가리 없는 설사 같은 게 녀석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원고라면, 그 젠장맞을 가그라카카 마인드 존에서 공전 주기를 세 번이나 꽉 채워 보낼 필요가 뭐가 있어? 그렇게 사건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말이야. 활동 경비를 없애버려”
“원고는 어떻게 할까요?” 비서가 묻는다.
“아, 네트워크 상에 발표해. 거기도 뭔가 있기는 해야 할 테니까. 난 머리가 아파서 집에 가야겠어.”
그래서 편집된 원고는 법무 팀을 돌며 마지막으로 난도질과 화형을 거치고 나서 다시 이곳으로 내려 보내지며, 여기서 원고는 은하게 어디에서건 즉시 검색할 수 있도록 서브-에서-넷을 통해 방송된다. 그 과정은 방의 오른쪽에 있는 터미널들에 의해 모니터되고 통제되는 장비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건 다른면에선 멀쩡하던 사람이 정치 고관만 되면 늘 생기는 일종의 정신 이상적 심리 차폐를 역으로 뒤집어 처리한 프로그래밍 기술이었다.

그는 은하계의 동쪽 경계로 향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거기에서는 지혜와 진실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사제들과 선지자들과 점쟁이들, 그리고 배달 전문 피자집――신비주의자들은 거의 대부분 요리를 전혀 못하니까――의 행성인 하와리우스 행성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아서에게 복사물을 건넸다.
“이게, 어, 이게 그러니까 당신의 충고입니까?” 아서가 자신 없이 복사물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아냐.” 노파가 말했다. “이건 내가 살아온 이야기야. 알겠지만, 어떤 사람이 충고를 하던 간에, 그 충고의 질은 그 사람이 실제로 살아온 삶의 질에 견주어 판단해야 하는 거야. 이제 이 문서를 죽 훑어보면, 내가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잘 보이라고 밑줄을 쳐놓은 게 보일거야. 그것들은 다 색인이 되어 있고 앞뒤로 참조가 가능해. 알겠지?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다만, 내가 내린 결정과 정 반대의 결정을 내린다면, 아마도 인생의 말년을…….”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허파 가득 숨을 들이켜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이런 냄새 나는 낡은 동굴에서 보내진 않을 거야!”

거기서는 또한 굉장히 달고 끈적끈적한 다양한 초콜릿 케이크를 사서 수도자들 앞에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그것 때문에 대부분의 수도자들은 이제 사라져버리고 없다.

“내가 마흔 번의 봄, 여름, 가을을 장대 위에 앉아서 알아낸 것을 그런식으로 말해줄 거라고 생각하나?”
“겨울에는요?”
“겨울?”
“겨울에는 장대 위에 앉아 있지 않나요?”
“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장대에 앉아 보낸다고 해서 내가 바보인 건 아니지. 겨울에는 남쪽으로 간다네.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거든. 굴뚝에 앉아 있지.”
“여행자들에게 해줄 충고라도 있나요?”
“응, 바닷가에 별장을 가지게.”
“알겠어요.”

“바닷가 별정이라고 해서 꼭 바닷가에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 물론 최고로 좋은 것들은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모이고 싶어 하거든.” 그가 말을 이었다. “경계 상황에 말이야.”
“그래요?” 아서가 말했다.
“땅과 물이 만나는 곳. 흙과 공기가 만나는 곳.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곳. 공간과 시간이 만나는 곳. 우린 한 쪽에서 다른 한쪽을 보는 걸 좋아하지.”

“자넨 자네가 보는 걸 보기 때문에 내가 보는 것을 볼 수 없어. 자넨 자네가 아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아는 것을 알 수 없어. 내가 보고 내가 아는 것은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에 보태질 수가 없어. 왜냐하면 같은 게 아니니까. 그건 자네가 보고 자네가 아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어. 왜냐하면 그건 자네 자신을 대신하는 게 될 테니까.”

“아, 맞아.” 노인이 말했다. “여기 자네를 위한 기도가 있네. 연필 있나?”
“네.” 아서가 말했다.
“이런 거야. 이제 보자고. ‘제가 알 필요가 없는 것들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아야 할 모르는 일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제가 알지 않기로 결심한 것들에 대해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모르도록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어쨌거나 이건 자네가 속으로 조용히 기도하는 바 아닌가. 그러니 내놓고 기도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음, 저, 고맙습니다.” 아서가 말했다.
“그것과 짝을 이루는 굉장히 중요한 기도가 하나 더 있어. 그러니까 이것도 적는 게 좋을 거야.” 노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좋아요.”
“이거야. ‘주여, 주여, 주여…….’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이 부분을 넣는 게 좋아. 이왕이면 확실하게 하는 게 좋잖아. ‘주여, 주여, 주여. 위의 기도의 결과로부터 저를 보호하소서. 아멘.’ 이거야.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이 마지막 부분을 빼먹어서 생기지.”

자연스러움. 그건 교묘한 말이었다.
그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 예컨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산다거나 빨간 불에 멈춰 선다거나 초당 삼십이 피트의 속도로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저 자기 세계의 습관에 불과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는 오래 전에 깨달았다. 하지만 바라지 않는다는 것――그건 정말로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건 숨을 안 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 모든 것은 창립 멤버 중 몇 명이 정착을 하고 욕심을 내기 시작하면서 생겼다. 그러는 동안 그와 다른 사람들은 계속 현장에 있으면서 조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악몽의 법인으로 냉혹하게 변해버린 <안내서>와 그것이 차지하게 된 괴물 같은 건축물에게서 점점 더 소외돼갔다. 그 안 어디에 꿈들이 있었나? 그는 건물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 변호사들, 지하층을 차지하고 있는 ‘직공들’, 모든 부편집자들과 그들의 비서들, 그 비서들의 변호사들과 그 비서들의 비서들, 변호사들의 비서들, 그 중 최악으로, 회계사들과 마케팅 부서들을 생각했다.

한 행성에서만 십오 년씩이나 조사를 해서 기사를 보냈는데, 녀석들은 단 두 마디로 줄여버렸지. “대체로 무해함.”

다른 히치하이커들은 타월을 색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온갖 종류의 비밀 도구들과 설비들, 심지어 컴퓨터 장치들까지 직물 안에 짜 넣었다.

그 빌딩은 프로그스타 공격 이후 완전히 새로 지어지면서 단단하게 강화되었고, 아마도 그 업계에서 가장 중무장한 출판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법인 위원회에서 디자인한 모든 시스템에는 항상 뭔가 약점이 있었다. 창문을 디자인한 기술자들은 그 창문들이 건물 안에서 짧은 사정거리에서 날아오는 로켓에 맞는다는 것은 예상하지 않았고, 그래서 창문이 깨졌던 것이다.

“전화 끊어, 새끼야! 네가 무슨 번호를 원하든, 어느 내선에서 전화를 걸든 내 알 바 아니야. 가서 불꽃놀이나 네 엉덩이에 쑤셔 박으라고! 이이이야아아! 우 우 우! 꽥꽥!”

물론, 칼들 중에서도 지존은 고기를 써는 칼이었다. 이는 빵 써는 칼처럼 칼질을 하는 대상을 뚫고 지나가면서 의지를 행사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대상과 협력해야만 했다. 힘을 합쳐 고기의 결을 따라가며, 고깃덩어리에서 얄팍하게 접히며 썰려나가는, 최고로 훌륭한 질감과 투명감을 지닌 고기 조각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트릴리언은 아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어조를 싹 바꾸어 이렇게 말했다. “너도 이젠 책임을 좀 져야 할 때가 됐어, 아서.”

그는 여자아이에게로 걸어가서 안아주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단다.” 그가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직 널 알지도 못하는걸. 하지만 몇 분만 시간을 주겠니.”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찌무룩하고 불안한 납빛 하늘은 묵시록에 나오는 4인의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 나와도 정신 나간 멍청이들처럼 보이지 않을 만한, 그런 하늘이었다.

“비입니다.” 새가 말했다. “아시겠어요? 그냥 비지요.”
“비가 뭔지는 나도 알아요.”
비가 겹겹이 겹쳐진 장막처럼 밤공기를 가르며 세차게 떨어지고 있었고, 그 사이로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그럼 비가 뭡니까?”

“어떻게, 어, 어떻게 이 훌륭한 물건들의 값을 치르시는지요?”
지도자가 다시 킬킬거리고 웃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씁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트리시아는 다시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그 회사는 특히 ‘아무나’한테 카드를 발급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이럴 때는, 사실 공간-시간의 결이라든가 다차원적 개연성의 도상의 심상한 완전성이라든가 온갖 종류의 총체적 혼란에 발발한 파동 형태의 잠재적인 붕괴 가능성이라든가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온갖 문제들이 그렇게 걱정할 가치가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아마 저 덩치 큰 남자가 한 말이 옳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가봐. 그냥 될 대로 되라 마음을 놓으라고 하더군.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될 대로 되라 하는 거지.”


<그리고 한가지 더> - 책갈피


“감정이라고? 너는 어떻게 머리도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냐?”
“나는 멍청한 게 좋아. 너는 상황을 명료하게 보잖아. 멍청하다는 건 햇살을 통해서 곁눈질로 흘겨보는 거랑 비슷하니까.”
포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젖은 수건으로 때리는 것처럼 왼쪽 두뇌의 구체를 흔들어 놓았다. “햇살? 대체 무슨 헛소리야? 멍청하다는 건 무지와 암흑이야.”

“한동안 소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약간의 공포를 불어넣으려고 해봤는데, 이제 사람들은 페니실린을 갖고 있고,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도 읽을거리를 가지고 있더란 말이요. 그러니 신들을 어디다 쓰겠소?”

홍차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좀 좋아졌다. 홍차가 없으면 아일랜드 사람은 사족을 못 쓰는 법이다.

“사전적 의미로 사랑이 무슨 뜻인지는 말해줄 수 있지요. 동의어도 다 말해줄 수 있고요. 그리고 엔도르핀과 시냅스와 근육의 기억 같은 얘기도 해 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심장에서 울리는 열정의 메아리는 내게도 미스터리랍니다. 나는 컴퓨터에요, 아서.”

과거에 대한 그 문장 기억나? 그건 벌써 과거에 있잖아. 그 문장이 ‘과거’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다는 거 말고는, 거의 기억도 안 나네. 과거는 기억들로 이루어지고, 기억은 이미 죽은 것들이라 상처를 줄 수가 없다고. 뭐랄까 뾰족한 막대기 구름 같은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편안함을 돈 주고 산단다.” 그녀는 옥수수 베는 낫으로 돼지 멱을 따면서 이렇게 말했다. “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면, 네가 파는 건 뭐든지 살 거야.”
지혜와 동맥에서 뿜는 피의 조합은 불가항력적이었고, 힐먼은 할머니의 가르침을 절대 잊지 않았다.

옛날 것보다 훨씬 낫고 고장 나면 알아서 제조사에 연락을 취하는 인공 바이오 하이브리드 골반의 도움을 받아 넓은 영지를 걸어 다니곤 했다.
힐먼이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왼쪽 골반이 일본에 전화를 넣을 지경이었다.

“여기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라고 관광위원회에서 코웃음을 쳤다. “몹시 개연성이 없어요.” 이 말은 당연히 전체 사업이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임을 보장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창문도 필요하다고요?” 눈썹이 올라가다 못해 아예 날아갈 정도로 놀라더니, 십장이 물었다. “그런 건 육 개월 전에 미리 말씀해 주셨어야죠. 미리 알기만 했으면 우리 애들이 설치했을 거 아닙니까. 지금 창문을 설치하려고 하면, 벌써 현장에 와 있는 배관공들 일을 좀 보류해야 해요. 그러면 배관공들 다음에 일하는 도색업자들이 싫어할 거고요. 게다가 도색업자 중에는 배관공하고 결혼한 친구들이 있어서, 가정불화가 일어날 겁니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현장에서 마사지해주는 인력이 부족해서, 현재 우리 애들 어깨에 극심한 젖산 축적이 일어나고 있단 말이에요. 어쨌든, 뭐 선생님이 물주니까 돈은 마음대로 쓰세요. 제 말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요구해서 프로젝트 전체를 경제적 자유낙하 상태로 만들 게 아니라, 좀 편할 때 미리미리 말했으면 좋았지 않았겠느냐 이거죠.”

“하지만 이건 빵이잖아.”
“그래서?”
“오후 세 시 이후에 탄수화물? 너 미쳤냐?”
“그냥 빵 껍데이 하나만 먹을게. 그게 다야.”
티드필은 개인 트레이너와 미용 관리사들이 다 볼 수 있게 빵을 높이 치켜들었다. “빵 껍데기 하나래. 그게 다란다. 이 빵 껍데기 하나에 설탕 몇 숟가랑이 들었는지 알아? 누구 아느냐고?”
“두 숟가락.” 펙스가 용기를 내어 보았다.
“일곱이야!” 티드필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일곱. 세 시 이후에 이걸 먹느니 엉덩이에 차라리 설탕 펌프를 꽂아 넣는 게 낫다고.”

우리는 단 하루를 함께 보냈는데, 그 하루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었어.

“당신도 썩 괜찮은 친구요, 비블브락스 씨.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 그 멋진 우주선으로 가져다주니까. 가끔은 당신이 아예 안 오면, 우리도 필요한 게 아예 없을 거 같기도 하다니까.”

“당신이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연쇄살인범이 되돌아와 가슴이 제일 큰 여자애만 빼고 다 죽이기 전에 잠시 갖는 짧은 휴지기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여자애는 다음 해에 나오는 속편에서 제일 먼저 죽는다.”

“엔딩이라는 건 없다. 그렇게 따지면 시작도 없다. 모든 건 중간이다.”

교과서적인 인간 > 지독한 개자식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나온 영어 속어와 농담

Closed book : 닫힌 책 (알 수 없는 일)
bee’s knees : 대단히 훌륭하다는 뜻의 속어
now what : 자, 이제 뭘 하지?
oh, well : ‘오, 이거 원’정도의 의미로 실망 낭패의 감정을 전달한다.
out of thin air : 희박한 대기 속에서 ‘느닷 없이’를 뜻하는 관용어.
lose one’s mind : 정신을 잃다. ‘미치다, 돌아버리다.’를 뜻하는 관용표현.
Silver-Tongued : 입담이 매끄러워 설득력이 있다.
STD(Sexually Transmitted Disease) : 성행위로 감염되는 질병
crap out :똥을 싸다. 혼비백산하다.
stiff upper lip : 사립학교 출신의 영국 지식인층은 발음할 때 윗입술을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을 ‘빳빳한 윗입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je ne sais quoi : 쥐느세쿠아. 프랑스어로 ‘나도 뭔지 몰라’라는 뜻.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뜻한다.
paddy : 패디. 패트릭의 애칭으로 영국 영어에서 아일랜드인을 폄하해 부르는 말이다.
begorrah : 베고라! 아일랜드 특유의 감탄사 신으로 부터(by God)의 완곡한 표현. 예) 날씨 참 좋네, 베고라!
보드라운 날씨를 하나님께 감사. 아일랜드식 표현
froody : 프루디는 grand; wonderful; cool과 동의어이다. 멋지다. 히치하이커 위키피디아(http://hitchhikers.wikia.com/wiki/Froody) 에는 The quality of being a frood.라고 나와있다.
Oh really, O’Reilly? : 오리얼리, 오라일리? ‘오, 그러셔, 이 친구야?’ 정도의 뜻으로 비꼬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
jumentous : ‘말 오줌 냄새가 나는’이라는 뜻의 형용사. 사전을 찾아보니 jument는 불어이고, 영어로는 mare(암말)을 뜻한다.
Go screw yourself : ‘엿 먹어’ 정도에 상응하는 욕. go f*ck yourself을 완화한 표현. f*ck you!의 다른 표현이다.
fruity pants: 영국 영어에서 여자 같은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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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와 드라마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까 고민하던 중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12주짜리 창작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고수 작가의 창작 비법과 더불어 작가로 살아가는 인생 경험담도 얻어들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강을 시작했다.

오늘 첫 강의에선 소설, 드라마, 영화 창작의 차이점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소설(순수문학)은 내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쓰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시청자와 관객 호응을 생각해야 한다.
영화는 일단 돈을 내고 극장에 들어온 이상 영화가 끝날 때까지는 관객이 앉아있지만,
드라마는 재미가 없으면 바로 채널을 바꾼다.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나갈 때 재미있는 영화였다는 최면을 걸어주면 성공하고,
드라마는 한 회가 끝나기 전에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면 성공한다.

소설

자신의 내면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시대 흐름과 맞았을 때 그에 공감하는 많은 독자가 생긴다.
모든 것은 나(소설가)로부터 시작되어 이에 공감하는 독자, 평론가, 출판사와 함께 작가의 삶을 영위한다.

1990년대에는 여성소설이 인기가 좋았고,
2000년대에는 서사 소설이 인기 좋았다.
2014년 현재는 위안과 희망을 담은 소설이 인기를 누린다.

소설가 자신의 내면을 풀어내는 것이지만, 시대에 그를 잘 녹여내지 못하면 대중에게 외면받는다.

영화

내용도 중요하지만, 예고와 홍보, 입소문이 중요해서 대중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면 요즘 흥행하는 ‘명량’은 믿을만한 영웅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이미지를 줌으로써 흥행에 성공하였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영화를 다 보고 나왔을 때 ‘재미있게 봤다.’라는 최면을 걸어주면 성공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려면 시나리오 마켓(http://www.scenariomarket.or.kr/)에 시나리오를 올리거나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인맥의 도움을 얻는 방법.
그리고 심산스쿨(http://www.simsanschool.com/)등에서 교육을 듣고 작가가 되는 방법이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성에 도움이 되는 책

  • Story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기
  • 시나리오 성공의 법칙, 알렉스 엡스타인
  • Save the cat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 블레이크 스나이더

영화 흥행 5분의 법칙

  1. 초반 5분에 승부수를 던진다. (굉장한 웃음, 공포, 사건의 시작 등 깊은 인상을 주는 영화의 주된 사건과,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2. 15분까지는 초반 사건에 대한 수습, 파장등으로 흘러가면서 주인공의 조력자, 적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가 자연스럽게 제공한다.
  3. 15분이 지나면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니 15분~20분 사이에 초반보다는 약한, 이벤트 정도의 사건 하나가 터져서 다시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4. 그 이후에는 롤러코스터를 타 듯, 10~15분 간격으로 작은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이를 해결한다.
  5. 전체의 약 2/3 지점 쯤에 이르러서는 메인 사건이 크게 터져주거나,가장 최종적인 적 vs 주인공의 싸움이 드러난다.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은 법칙과 다르게 흘러가기도 하고,
스릴러의 경우, 차근차근 쌓아가다가 마지막에 터뜨리는 식으로 가기도 한다.

드라마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방송 3사에서 진행하는 드라마 공모전에 참여하여 입상하는 방법(장편에서 신인이 입상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단막극에 신인이 몰린다.).
그리고 드라마 제작사에 들어가서 작가가 되는 방법이 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신인 작가에게 장난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으므로 드라마 제작사와 일을 할 땐 숙고해야 한다.
드라마는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후반 10분에서 15분사이에 다음회를 궁금하게 만들면 성공한다.

극 창작의 4대 요소

  • 소재 - 독특한 소재일수록 좋지만, 소재는 재료에 불과하다.
  • 캐릭터 -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한국에서는 사랑스럽고 믿을만한 캐릭터가 인기가 좋다.
  • 대사 - 전문 용어등에는 문어체를 쓰기도 하지만 되도록 구어체를 쓴다. 캐릭터를 잘 이해해야 그에 맞는 대사가 나온다. 잘 쓰여진 대본은 대사만 보아도 말하는 캐릭터가 떠오른다. 소재는 좋은데 재미없는 컨텐츠는 모든 캐릭터의 말투가 비슷해서 캐릭터의 특색이 없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구성 - 잘 짜여진 구성은 매력적이다. 전체적인 스토리에서 시간의 흐름이나 일어나는 사건에 따라 캐릭터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를 잘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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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 대서사시. 일리아드.

최고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일리아드.
막상 읽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내용의 태반이 호구조사에요.
"나는 어떤 신의 자식 누구와 아무개가 숲에서 만나 낳은 누구이다. 힘이 세지!"
그러나 이런 호구조사뿐인 책은 아니라서, 흥미로운 부분도 보입니다.
'옛날엔 전차 경주, 레슬링, 권투시합 등을 하면서 놀았구나.'
'옛날에도 등심은 귀한 부위였구나.'
'옛날엔 솥이 비쌌구나.'
뭐 이런 옛날엔 어땠네 하는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오래전에 번역된 책을 읽어서 그런지 평소 쓰지 않는 단어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습니다.
얘를 들자면 '춘부장'인데요.
제 또래는 보통 '아버님 안녕하시지?'라고 묻지,
'춘부장께서도 안녕하신가?' 라는 말을 쓰지 않거든요.
이런 단어를 보면, 과연 이십 년 쯤 지난 뒤엔 우리말이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궁금합니다.
일리아드.
뭐 고전을 읽는 재미도 있고,
잘 안 쓰는 단어의 발견함에 기쁨도 좋지만,
저는 일단 애주가로서 신들의 감로주인 암브로시아를 맛보고 싶군요.

Rome Italy-'일리아드(Illiad)'

일리아스 - 책갈피

"개의 얼굴에다 암사슴의 심장을 지닌 주정뱅이여."
-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리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인간이란 해가 감에 따라 낙엽처럼 왔다가 가는 것. 바람이 불어 가을에는 잎이 떨어지지만 봄에 다시 소생하면 싹은 번갈아 생생하게 터오는 것이지.
- 글라쿠스

아가멤논 왕은 특별 대우의 표시로 아이아스에게 약간의 등심 고기를 하사했다.
전하 어인 말씀입니까? 그대는 다른 쓸개빠신 병사들이나 지휘하셔야 하겠소.
-오딧세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제우스 신이 부인을 품에 안으니, 밑에는 신선한 땅이 새롭고 깨끗이 자라는 풀의 침대를 만들고, 이슬의 클로버며 크로커스, 부드럽고 두터운 히야신스 등이 땅 위에 불쑥불쑥 솟아 올랐다. 이 곳에 그들이 눕자 금빛 구름이 그들을 감쌌고, 이슬 방울이 빛을 발하며 떨어졌다.

"전우들이여 대장부다워라! 각자의 명예를 명심하고 싸움터에서의 여러분의 행동과 여러분 자신을 전우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치욕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라도 인식하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러나 도주하는 놈들에게는 죽음과 치욕밖에는 없다!" - 아이아스

"전우들이여! 용감한 영웅들이여! 아레스 군신의 후예들이여! 장부의 면목을 보여라! 사명을 잊지 마라! 우리 뒤에 원군이 있는 줄 아는가! 아니면 우리를 보호해 줄 튼튼한 성벽이라도 있는 줄 아는가? 우리를 지켜줄 성벽이 있는 도시도 없고 원군도 없다! 여기 눈앞에는 무장한 적군이 다가오고 뒤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고국은 까마득히 멀리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트로이아의 벌판에 있는 것이다! 무서운 반격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전쟁에는 동정이 없는 법이다!"
- 아이아스

"여기서 좀더 강하다고 평등을 짓밟아서 보상마저 뺏는 자가 있네. 이것이 내게는 무서운 설움과 고민의 씨가 되었다네." - 아킬리우스

"이 무서운 양반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초로인생이란 어차피 조만간 죽을 운명인데 당신이 그를 죽음에서 구해내겠다는 겁니까? 맘대로 하시겠시만 다른 신들에게 찬성을 기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잠깐만 생각해 보시오. 그대가 살페돈을 살려 보내신다면 다른 신들도 제자식을 이 싸움에서 빼돌릴 겁니다. 누구나 제자식 사랑하는 것은 그대도 아는 바가 아니겠소. " - 헤라가 제우스에게

"언변은 토론에선 능사요, 싸움에서는 행동이 그대의 운명을 좌우하는 거요. 그러니 입씨름은 집어치우고 과감하게 싸워라!" - 파트로클로스

"왜 그렇게 우느냐? 파트로클로스 역시 죽었다. 그는 너보다 몇 배나 뛰어난 인물이었다. 나도 또한 큰 인물로 보지 않는가? 나의 아버지는 용맹한 장군이고 어머님은 여신이다. 그러나 역시 나도 죽음과 운명의 쇠사슬에 묶어져 있다. 어느 누가 싸움터에서 창으로 찌르든 활로 쏘든 하여 내 생명을 빼앗아 갈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그것이 아침이 될지 저녁이 될지 또한 한낮이 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아킬레우스가 프리암 왕의 아들 리카온에게

스트리페 - 살상의 아레스 신과 벗이요 누이다. 처음에는 키가 작았지만, 발은 땅에 붙어 있었으나 머리가 하늘에 치솟을 때까지 자란 여신이다.

군중들은 편을 들어 이 편도 찬성하고 저 편도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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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펫. 롤리타.

님펫(Nymphet)은 작가 니보코프가 지어낸 말로 요정이란 뜻의 님프(Nymph)의 애칭입니다.
소설 롤리타에선 9~14세의 성적 매력 지닌 여자아이를 지칭해요.
이 님펫에 빠진 험버트 험버트라는 남자는 어떤 남자일까요?
험버트 험버트는 진과 파인애플 쥬스를 섞은 핀(Pin)을 즐겨마시는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핀(Pin)을 마시면 호랑이처럼 힘이 두배로 솓는다는데,
저도 먼지 쌓인 진 술병을 열어서 파인애플 쥬스를 한번 섞어마셔 봐야겠어요.
진1:쥬스2 비율로 섞으면 맛이 좋다네요.

작가를 좀 알아볼까요?
우선 니보코프는 프로이트를 주술사라고 깝니다. 원시 시대의 샤먼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인데요.
롤리타의 등장인물을 프로이트 발달 단계와 엮어 보니 얼추 들어 맞아요.
험버트 험버트(Humbert Humbert)는 항문기에서 발달이 멈추어 항문적 공격(anal aggressive)성격으로 애인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소유의 대상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고,
돌로레스 헤이즈(Dolores Haze)는 약간의 남근기 고착으로 경박하고 유혹적인 면이 있네요.
어쩜 니보코프는 이런 프로이트 이론이 혈액형별 성격과 별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니보코프는 언어유희를 즐겨씁니다.
예를 들자면
‘섬으로 가는 배에서 배를 먹었더니 배가 아프네.’
‘저 구리로 만든 개구쟁이 개구리는 누구 작품이요?’
이런 식이죠. 물론 예문은 그냥 지어낸 겁니다.^^;
이런 언어 유희가 책 읽는 재미를 더 해 주는데,
제가 원서로 읽은 게 아니라 재미가 반감되어 아쉬웠습니다.

장면 묘사에 특히 탁월한데, 그중 야구하는 자기 아들 자랑을 내내 늘어놓는 이발사에 대한 묘사는 여운이 깊게 남습니다.
소설 속 단편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에요. 다른 여러 부분에서도 묘사가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니보코프가 시시한 졸작과 관념소설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걸로 봐서는 순수 문학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가 작가에 대한 저의 생각만 적어 놨네요.
아무래도 책은 직접 읽어야 재미가 있죠.:D
아무튼 니보코프가 쓴 롤리타는 세세한 장면 묘사가 두드러지는 책입니다.

부라노섬, 베니스, 이탈리아-'롤리타 Lolita'

롤리타 단어 설명, 인용문

민들레(dandelion) - 사자의 이빨을 뜻하는 불어 dent-de-lion에서 유래

호모 폴렉스(Homo pollex) - 엄지 손가락을 드는 인간이라는 뜻의 우스갯소리. 히치하이커.

하르파이아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추녀의 얼굴을 가진 새의 모습이다.

나폴리 - 동성애의 세계적 중심지로 유명한 도시

아르고스 -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으로, 눈이 네 개 혹은 온몸에 백 개나 달려 있다고 해서 ‘엄중한 감시자’의 대명사로 토한다.

프리아포스 - 그리스 다산과 생싱력의 신 음경을 뜻하는 일반명사

요한계시록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킹 제임스 성경 발췌)

롤리타 언어유희

friends - 친구들 / fiends - 악마들
the rapist - 강간범 / therapist - 치료사

롤리타 기억에 남은 문장

안녕, 리타 - 지금 네가 어디있는지, 만취 상태인지 숙취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리타, 안녕!

사실 내가 미성년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어리고 순결한 요정 같은 금단의 소녀가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초라한 현실과 나에게 약속된 위대한 이상 - 즉 위대하지만 영원히 실현할 수 없는 장밋빛과 잿빛의 미래 - 사이의 격차를 이렇게 무한한 완벽성으로 메워가는 상황이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리라.

그 사람은 내 가슴에 상처를 남겼어요. 아저씨는 내 인생에 상처를 남겼을 뿐이고.

대부분의 미국 출판사는 적어도 세 가지 주제를 철저히 금기시하는데, 이 책에서 다룬 주제가 하필 그중 하나였다. 나머지 두 가지는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여 눈부시게 완벽한 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자녀와 손주 들을 슬하에 거느리는 이야기, 그리고 철두철미한 무신론자가 행복하고 값진 삶을 살다가 106세가 되었을 때 잠을 자다가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이야기다.
- 작가의 말

『롤리타』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서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 그런 책은 흔치 않다. 나머지는 모두 시시한 졸작이거나 이른바 관념소설인데, 마치 거대한 석고 덩어리처럼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로 조심스럽게 전해지는 관념소설도 사실은 시시한 졸작을 때가 아주 많다. 언젠가는 누군가 망치를 들고 나타나서 발자크와 고리키와 토마스 만을 힘차게 때려부수리라.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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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합니다. 고리키 단편집.

문학은 언제나 정치적입니다.
작가가 추구하는 성향이 담겨있지요.
그 성향이 어떻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글에도 힘이 없습니다.
고리키의 글에는 자신의 메시지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짧은 단편 한편 한편에 목소리를 잘 담은 고리키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이 단편집의 특징은 딴 사람 이야기가 많다는 겁니다.
집시 로이코 조바르와 랏다의 사랑 이야기, 독수리의 아들 라라.
심장을 뽑아 길을 밝힌 단코 이야기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였고,
다른 단편들은 관찰자가 주인공을 지켜보는 시점에서 쓰였어요.
대체로 동네 어르신에게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생동감 있거든요.
참 재미있는 책입니다.

러시아 소설에 자주 나오는 사샤 (Саша [Sasha])가 뭔지 궁금하여 찾아봤습니다.
찾아보니 남자이름 알렉산드르(Александр [Aleksandr]) 및
여자이름 알렉산드라(Александра[Aleksandra])의 애칭이라는군요.
단편 중 ‘코노발로프’의 주인공 이바노비치는 알렉산드르가 아닌데도 사샤라고 불리는 걸 보면,
이름에 크게 상관없이 사용하는 애칭인가 봅니다.
혹시 번역하신 최윤락 박사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댓글을 달아주시면 좋겠네요.^^;

노르웨이 베르겐-'고리키 단편집'

고리키 단편집 - 책갈피

그는 항상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더군. 하나님께 순종하면 원하는 모든 걸 들어 주실 거라고 말이야. 그런데 정작 자신은 다 헤진 남루한 옷을 입고 있기에, 내가 하나님한테 새 옷이나 한 벌 주십사 해보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욕을 마구 퍼부어 대면서 날 내쫓는 거야. 그러면서도 남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설교하더군. 그러니까 내가 좀 무례하게 굴었다고 하더라도 용서해 줘야 하는 거 아냐? 선생이란 작자들도 다를 건 하나도 없어. 아껴 먹으라고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루에도 열 배나 더 처먹거든.
- 마카르 추드라

생각만 한다고 해서 길 가운데 놓인 바위가 치워지지는 않습니다. 생각과 고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해서야 되겠습니까? 일어납시다! 숲을 헤치고 나아갑시다! 끝은 반드시 있을겁니다. 이 세상에 끝이 없는 걸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갑시다, 자, 여러분!
- 단코

내가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요, 여기 오는 동안? 아저씨를 노로 쳐서 돈을 빼앗고 시체를 바다 속에 버리자…. 어때요? 누가 아저씨를 찾겠어요? 찾는다 해도 누가 죽였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이 땅에서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하나 죽었기로서니 누가 죽였든 무슨 상관이냐고요!
- 가브릴라

자신의 창자를 채울 단 몇 근의 빵을 얻기 위해 수천 근의 빵을 어깨에 짊어지고 무쇠 선박의 뱃속을 드나드는 인간들의 긴 행렬은 눈물겹도록 우스꽝스럽다.
- 첼카시 중

비렁뱅이! 돈이 뭐라고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지? 탐욕스럽기는…. 분수도 모르고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
- 그라시카 첼카시

인간은 각자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야. 그렇게만 살면 누가 죄를 짓겠어?
- 이바노비치 코노발로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삶의 질서에 대한 책이 없을까?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 말이야.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어떤 것인지 난 알아야 겠어. 난 늘 내가 저지른 일로 인해 혼란스러워. 처음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하지만 나중엔 해서는 안 될 일로 밝혀지거든.
- 이바노비치 코노발로프

언제나 인간은 누군가에게 자기의 사랑을 쏟고 싶은 욕망이 있다. 비록 그 사랑이 묵살되고나 더럽혀질지라도 그런 것은 전혀 상관 없다. 인간은 이웃의 생명을 자기의 사랑으로 망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면서 애인을 존경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 스물여섯 사내와 한 처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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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세계를 그린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장편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언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책이었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가 어디 있나...’
도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눈에 띄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왠지 원래 보려던 책보다 더 끌려서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죠.
레닌이 이 책을 보고 감동을 하여서, 자신의 책 제목으로 썼답니다.
그는 이 소설을 ‘당신의 전 생애를 내걸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소설이다.’라고 평했다고 해요.

무엇을 할 것인가?
비록 중간마다 좀 지루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알렉산드르 마뜨베이치 키르사노프
드미뜨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베라 빠블로브나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이 밖에도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라흐메또프였네요.
그는 자기 삶을 이상 실현의 도구로써 사용하는 인물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의문을 던져 봅니다.
이상적인 세상.
행복을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헝가리 현대 미술관-'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

무엇을 할 것인가 - 책갈피

건강한 붉은 뺨과 풍만한 가슴은 청진기를 모르고 컸을 것 같아. - 드미뜨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당신도 알다시피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 <개성>, 그리고 <지식> 이야. - 드미뜨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우리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어떤 욕망이 일어난다고 할 때 그 욕망을 잠재우는 것이 바람직한 걸까, 아니면 바람직하지 않은 걸까? 아니, 어떤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네.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세겹으로 악화시킬 뿐이거든. 우리들 자신의 건강을 해치거나 자신의 마음을 기만하거나, 아니면 그 둘 다지.
설사 그렇게 해서 욕망이 억제된다고 해도 결국 인생은 질식해 버리고 말거네. 그거야 말로 불쌍한 노릇이지 - 드미뜨리 세르게이치 로뿌호프

나는 오직 독창적인 작품들만 읽는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으로 모든 작품을 평가한다. - 라흐메또프

당신은 그럼 그것을 질투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가요, 라흐메또프?
배운 사람에게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감정이고 허위적인 감상이며 경멸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은 남이 나의 속옷을 입지 않고, 나의 해포석 담배 파이프를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은 사람을 개인적인 소유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의 결과입니다. - 라흐메또프와 베라 빠블로브나의 대화.

그들은 결코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 않다. 다만 여러분이 너무도 낮은 곳에 있을 뿐이다. -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오직 자기의 아내를 예전의 신부를 보던 눈으로 보라. 그리고 그녀도 언제라도 <당신이 싫어요. 우리 헤어져요> 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 니꼴라이 체르니셰프스끼

하지만 우린 아직 즐거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라. 저들과 같은 그런 식의 생활을 해본 적이 없거든.
그래, 오직 저들과 같은 사람들만이 완전한 행복과 기쁨을 알 수 있는거야!
저들은 건강미와 활력이 넘쳐 보여. 또 얼마나 싱그럽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하나같이 쾌활하고 즐거운 미남, 미녀들이야. 그리고 노동과 삶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야! - 베라 빠블로브나

그러시다면 당신은 과부들에게만 결혼을 허락하실 생각인가요?
당신은 아주 적절하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오직 과부들만이지요. 처녀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 까쩨리나 바실리예브나와 찰스 비몬트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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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치열한 방황을 그린 성장 소설. 청춘의 문.

아주 우연히 찾은 책입니다.
저의 첫 수필집 제목을 ‘방랑은 청춘이다.’라고 붙이기 전에,
혹시 같은 제목의 책이 있는지 찾아보았죠.
같은 제목의 책은 없었지만, 검색 중에 이 책이 눈에 띄였습니다.
‘청춘의문 3 : 방랑편’
그때 생긴 호기심에 언젠가 읽어봐야겠다는 마음먹었죠.
그로부터 1년이 지나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청춘의 문은 국내에 총 7권이 나와 있어요.
1 고항 편
2 자립 편
3 방랑 편
4 타락 편
5 망향 편
6 재기 편
7 도전 편

8권인 풍운 편은 일본에서 연재하다 중단이 되었다고 하는데, 한국어판은 없습니다.
1권부터 읽으면 6권에서 소설이 끝나는 기분이 들고, 7권은 전혀 느낌이 다릅니다.
6권이 나오고서 한참 후에 7권이 쓰였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가 봐요.

청춘의 문.
재미있습니다.
영양가 있습니다.
주인공 신스케의 20대 중반까지 이야기인데, 제 나이가 이제 30대 초반이라 그런지 몰입도가 높았어요.
졸린 소설도 싫지만, 불량 식품처럼 읽고 나서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책은 더 싫다면?
이 소설 참 읽을만합니다.


헝가리 현대 미술관-'청춘의 문'

청춘의 문 책갈피

청춘의 문 1 - 고향 편

정말로 상대방을 죽일 생각도 없는데 칼이나 총을 집어든다면 그건 남자가 아니야. 죽일테면 가서 죽이고 와라. - 하나와 류고로

멋진 남자야. 하지만 한심한 인간이야. 둘다 맞는 말이야. - 아즈사

침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주변을 바라본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또 하루를 살 수 있게 되었구나 라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하늘에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하루 세끼의 밥을 먹고 사람을 미워하거나 돈을 바라지 않고 밤이 되면 옛날 일이나 어릴적 생각을 떠올리면서 푹 잠이든다. 어때, 신스케. 인간의 행복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 하나와 류고로

청춘의 문 3 - 방랑 편

바로 너희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해. 너희 스스로가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자네들은 그렇지가 않아. 세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정의와 이상을 위해서, 혁명을 위해서,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멋들어진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싸운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들이야.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 마루야 다마키치 (마루다마)

"뭐라고 해야 할까. 과도하게 자기중심주의적인 면이 있어. 이상을 추구하는 순수함과 더불어 아주 어린아이 같은 제멋대로인 면이 강하지. 하긴, 시인아 예술가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긴 하겠지만" - 미야하라 다미에 (다쿠보쿠에 빠져있는 남자들의 공통점)

청춘의 문5 - 망향 편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무서울 것 하나 없다.'
오리에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연예계에서 살아남으려고 하기 때문에 비굴해지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도 밥을 먹고 살아 갈 수 있다고 굳게 마음을 먹으면 남을 어렵게 여길 필요도 없다. - 마키 오리에

"서로 사랑해서 가난해지거나 생활이 고달퍼지거나 자유가 속박되거나 하는 사랑은 한심하잖아.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함으로써 좀 더 세계가 넓어지고 자유로워지는 그런 관계야 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 이부키 신스케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해도 실제로는 그렇게 안 돼." - 마키 오리에

규슈 춘가(春歌)
[봄의 노래라는 뜻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성의 기쁨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부른 노래]
하나, 광부는
낮 동안에 한다, 아가야.
둘, 선장은
배에서 한다, 아가야.
셋, 거지는
길에서 한다, 아가야.
넷, 기생은
불러서 한다, 아가야.
다섯, 부부는
언제나 한다, 아가야.
여섯, 강간은
억지로 한다, 아가야.
일곱, 이별은
울며 한다, 아가야.
여덟, 나무꾼은
산에서 한다, 아가야.

청춘의 문 6 - 재기편

창조적인 일을 하는 인간한테는 지금까지의 경력이나 실적은 아무런 버팀목이 되질 못해. 자네도 그 정도는 알 거 아닌가. 지금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가가 문제지 과거에 뭘 했는지는 문제가 안돼. - 우자키 슈세이

중세 유럽에 유명한 과학자이자 사상가가 있었어. 그 사람은 굉장히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누군가가 그사람한테 당신은 자신에 대해 지나친 홍보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지. 재능이 뛰어나다면 가만히 있어도 세상이 알아줄 거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나? 그 사람은 창밖에 보이는 교회의 첨탑을 가리키면서 유유히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 '당신한테는 저 교회의 종소리가 들립니까? 보시오, 하나님조차도 종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고 한답니다.' 라고 말이야. - 우자키 슈세이

'이 세상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그래, 복잡하게 계급 운운하며 얘기할 필요도 없다. 밥 한 끼를 눈물을 흘리며 먹어본 적이 있는 사람의 세계와 그렇지 못한 사람의 세계. 그렇게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 설령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더라도 그 두 세계 사이의 깊은 골은 메워질 수가 없다.' -이부키 신스케

청춘의 문 7 - 도전편

인간의 운명이란 알 수가 없는 건가 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돛단배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안됩니다. 그런데 일단 순풍이 불기 시작하면 가만히 있어도 배는 쑥쑥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 마키 오리에

나는 인간은 모두 형제라고 배웠는데 길거리나 광장에서 매번 느낀 점은, 인류란 없다. 존재하는 것은 러시아인, 폴란드인, 독일인, 유태인 같은 인종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나의 어린 마음을 상당히 괴롭혔습니다. 어린애가 '세상을 위한 고민'이라니 어른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릅니다. 그 무렵 나는 어른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어른이 되면 반드시 이런 불행을 없애 보이게싸 끊임없이 혼잣말 하곤 했습니다. /에스페란토의 아버지 자멘호프 / 이토 사부로, 이와나미 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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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장편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사람마다 가벼운 영역과 무거운 영역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가벼운 영역이 큰 사람을 보면 가벼운 사람이라 느껴지고,
무거운 영역이 큰 사람을 보면 사람이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지요.
사실 영역의 크기에 따라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자신에게 진지한 부분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별것도 아닌 일 같은데 심각한 사람을 보면 무겁게 느껴져요.
이 가벼움과 무거움 덕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가벼움과 무거움 때문에 골치가 아프기도 해요.
가벼움의 측면에선 무거움이 답답해 보이고,
무거움의 측면에선 가벼움이 신중하지 못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한 쪽만 고집하지 않고 두 영역을 잘 조화하여 좋은 방향으로 해결하면
가벼움과 무거움에서 비롯된 갈등이 줄어들겠지요.

정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책장을 덮고 머리에 떠오른 것은 가벼움이나 무거움이 아니었습니다.
집착이란 단어가 떠올랐어요.
토마스는 바람둥이 의사 선생으로 여자에 집착하고,
사비나는 화가로 반항에 집착하며,
테레사는 토마스의 부인으로 신분과 남편에 집착하고,
프란츠는 대학교수로 일탈에 집착합니다.
세인트버나드와 울프 종의 잡종 암캐 카레닌은 크루아상에 집착합니다.
집착은 고통을 부를 뿐입니다.
집착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질문하세요.
"그래야만 하는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6번. 4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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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라는 질문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린 왕자.

안토니 드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죠.
저도 이 책을 몇 번 보았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보아 뱀과 코끼리뿐이었어요.
그것은 아마 책을 읽었던 시기가 어정쩡했던 것이 큰 이유였겠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읽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어린 왕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순수하지도 않았고,
세상을 제대로 겪지도 못한 어린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보아 뱀 그림을 보고도,
이건 암만 봐도 중절모라고 생각하던 어린이였습니다.
그 그림을 기억한 건 누가 이런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 그건 보아 뱀이잖아요.’
보아 뱀을 실제로 본 적도 없으면서,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이인척하고 싶었던 거죠.

Le Petit prince

그 후로 한참이 지나서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어릴 땐 제가 마치 어린 왕자인 양 책을 보았으나,
이번엔 사막에 불시착한 생텍쥐페리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뱀 말고 다른 등장인물들에 더 눈길이 가네요.
생택쥐베리가 사랑했던 어떤 여인은 장미란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나는 그녀의 서투른 속임수 따위에도 애정이 녹아 있단 걸 짐작 해야 했어.’
‘하지만 그녀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기엔 너무 어렸었지.’
그리고는 이웃 행성에 사는 이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책에선 ‘어른’이라고 표현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들은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으로 성장하진 못했습니다.
권력, 돈, 지식, 허영, 후회에 집착하거나, 아무런 방향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
어린 왕자가 세상에 나온 지 근 칠십 년이 흘렀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린 왕자를 읽었고,
그 얼간이 이웃 중의 하나를 본보기로 삼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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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

제가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건 이십 대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책보다 영화를 먼저 봤는데, 참 재미있게 봤었어요.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책장에 꽂힌 오만과 편견 양장본을 보았죠.
“오! 나 이거 빌려줘~”
그때 빌려다 읽었는데 역시 영화보단 책이 재미있더군요.
책을 돌려주며 말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친구는 책을 받아 들며 저에게 말했어요.
“그래? 이런 통속 소설은 널리고 널렸는데.”
저는 책은 단지 재미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협지나 판타지 같은 재미 위주의 책을 주로 읽었죠.
인문, 사회, 고전은 왠지 교과서 같아서 읽기 싫었습니다.
현대문학도 가뭄에 콩 나듯 읽었어요.
저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뭐 통속적이면 어때. 보는 동안 즐거우면 되지.”
지금은 그때랑 생각이 좀 다릅니다.
책엔 작가의 이상이 잘 녹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이상을 얼마나 재미있게 풀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재미가 책의 기본이라는 건 변함 없어요.
펼치기조차 싫은 책이라면, 아무리 멋진 이상이 숨어 있으면 뭘 합니까?
우선은 재미가 있어야 읽죠.
아래는 저의 책 취향입니다.

재미도 없는 책 < 재미만 있는 책 < 재미도 있는 책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재미도 있고, 영혼을 울리게 하는 책입니다.
이런 부분이 책 속에 단 한 구절이라도 있다면, 멋진 책으로 기억에 남아요.
재미는 있지만, 알맹이가 없는 책은, 다 읽고 나면 허무합니다.
그래도 읽는 동안 삶에 즐거움을 주니, 괜찮아요.
재미도 없는 책은 읽지 않습니다.
그런 책은 읽는 속도도 더디고, 설령 끝까지 읽어도 제 삶에 도움될 게 하나도 없거든요.

베넷가의 여인들

오랜만에 오만과 편견을 다시 읽으니 예전 같지 않아요.
그땐 분명 중간은 갔는데,
이젠 그때만큼 재미도 못 느끼겠군요.
입맛이 변하듯 독서 취향도 변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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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청춘을 누리는 흰머리 친구. 희랍인 조르바.

‘저 조르바처럼...’
‘나비에 따듯한 입김을 불어...’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자꾸 인용되나?
재미있게 읽은 책 중 상당수에 조르바가 등장합니다.
궁금해서 언젠가 읽으리라 마음에 품었어요.
‘과연!’
책장을 펼쳐 들자마자 푹 빠져들었습니다.
알렉시스 아저씨는 참 재치 넘치는 사람이라,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이 아저씨와 지내면서 참 심심할 일은 없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즘 행복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프로젝트를 실체화하며,
더욱 행복에 대해 숙고하게 되었죠.
어떤 행동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나는 내 행복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나?
행복하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날 생각했습니다.
‘이게 다 뭐야. 그냥 지금 행복하면 되는 거지. 내일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순 없어!’
조르바 아저씨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제가 크게 공감하는 책이에요.
다만 이 책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작가가 마음에 드는 사람 이야기를 썼다는 거죠.
마음에 드는 사람에 대해선 콩깍지가 씌어서 잘못이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잖아요?
책을 읽는 동안 저 역시 조르바 아저씨의 재치 있는 입담에 빠져들었지만,
안타까운 부분이 눈에 자꾸 밟혔습니다.
젊었을 때 살인, 약탈, 강간 등의 경험을 통해 그게 나쁜 건 줄 알았다는 부분이에요.
‘사람을 죽여보니 이건 아니더라.’
꼭 사람을 죽여보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잖아요?
조르바처럼 열린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꼭 나쁜 경험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무얼 기반으로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건 간단해요.
탐욕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행복을 누리려는 건지 알아보는 방법인데요.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이야기 할게요.
스포츠로 사냥을 즐긴다고 예를 들어 봅니다.
단순히 기쁨을 느끼기 위해 살아있는 생명을 쏴 죽이는 놀이 말이에요.
우선 마음속에 나와 똑같은 사람을 여럿 만들어 모아 둡니다.
저기 십 미터 앞에 또 다른 내가 서 있습니다.
갑자기 씨익 웃더니 총을 꺼내 저를 쏘는 거죠.
그때.
‘굿샷! 저 친구 참 행복하겠구먼. 나도 덕분에 즐겁네.’
하고 죽을 수 있다면, 사냥은 나의 진정한 행복일 거예요.
하지만 내가 쏘는 건 즐겁고, 맞는 건 괴롭다면? 그저 욕심일 따름입니다.
저는 자유롭게 행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산투리(Santur)

나를 웃게 만든 조르바

오른쪽 다리로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그의 앉은 모양은 동양인 특유의 안락한 자세였다.
(이때 마침 이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어요.:D)

이빨도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된다, 얘들아 깨물면 못써’ 하고 소리치긴 쉬워요.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나님도 악마도 믿을 거요.

동생은 약아빠진 토박이 고리대금 업자이고 위선적인 교인이며 이를테면 사회의 기둥 같은 사람인데...

우리 사내들에게 하느님이 좀더 분별력을 주셔야 해요. 아니면 수술을 시켜 버리든지. 내 말 믿어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내들은 끝나는 거에요.

“조르바, 일어나서 마을로 산보나 같이 갑시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군요, 하지만 비가 와요. 혼자 좀 가면 안 돼요?”

“산다는 것 자체가 말썽이오. 죽으면 말썽이 없지.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사는 거요!”

내가 언젠가 사람에겐 모두 자기 나름의 천당이 있다고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 당신의 천당은 책이 잔뜩 쌓이고 잉크가 됫병으로 가득 놓인 방일지도 모르겠군요. 포도주, 럼, 브랜디 병이 가득한 방을 천당으로 놓인 방을 천당으로 아는 놈. 돈이 잔뜩 있는 곳을 천당으로 아는놈... 사람들은 모두 각양각색이지만, 내 천당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런 곳입니다. 벽에는 예쁜 옷이 걸려 있고, 비누 냄새가 나고 푹신푹신한 침대가 있고, 옆에는 여자가 누워있는 아늑한 방 말입니다.

세상에는 미치는 방법이 일흔일곱 가지가 있다고 하더군요. 이건 일흔여덟번째의 방법인 모양이에요.

인생의 신비를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몰라요.

혹시 암양을 네뎃 마리 상대하고 난 숫양 본 적 있어요? 침을 질질 흘리고 눈깔에는 눈물과 눈곱 투성입니다. 기침까지 켁켁 해대는 꼴을 보면 정말 안쓰러울 정도지요.

나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요. 죽음을 마주하지만 두렵지는 않아요. 그러나 그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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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운 나이의 줄리안 소렐이 겪는 파란만장 라이프. 스탕달의 적과 흑.

젊고 잘생긴데다가 머리까지 좋은 청년. 줄리안 소렐.
그는 자기가 머리가 좋다는 걸 압니다.
어떻게 하면 이 좋은 머리로 좀 잘 살아볼까 고민고민해요.
부와 권력을 가지는 것이 잘 사는 거라 생각하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만나는 사람들을 성공을 향한 수단으로 삼고,
최대한 이용하려고 애쓰는 줄리안 소렐.
하지만 감정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게 쉽지 않네요.
‘나의 성공을 위해 이 여자를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던 소렐은 바로 그 여자에게 푹 빠져 버립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공은 하고 싶군요.
...

The Red and the Black

이 책을 읽는 동안 참 씁쓸했습니다.
겨우 19살의 청년 줄리안 소렐이 부와 권력을 성공이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왜일까요?
어려서부터 그런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 좀 더 벌어볼까?’
‘남들 위에 올라서는 권력을 가질까?’
이런 생각 투성의 어른들 틈에서 자란 아이가 달리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어른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죠.
“요즘 것들은 못 쓰겠어.”
어린아이는 맑은 물과 같아서 쉽게 물이 들 뿐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미디어가 발생해서 더욱 나쁜 것을 접하기가 쉽습니다.
책이나 방송을 통해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죠.
어른들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섹스 비디오 따위가 정말 아이들을 나쁘게 만들까요?
설령 그것이 나쁜 것이라고 해도,
‘독하게 살아라.’
이런 걸 충고랍시고 들려주는 어른이나,
세상을 각박하게 살아가도록 조언하는 책보단 못할 겁니다.
19세기 소설 적과 흑에서 일어나는 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존재해요.
아이들이 탐욕에 찌들어 살지 않길 바란다면,
어른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모두가 돈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돈을 벌어서 쌓아두길 원했다. 사람들은 부자라면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부자가 되는 좋은 방법은 땅을 사는 거다. 모두가 돈과 땅을 가진 사람을 존경했다. 그래서 부자들은 끊임없이 땅을 사서 넓히고 정원을 만들어 그 주위에 높은 벽을 쳐 놓았다.
- 스탕달의 적과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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