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키나발루 산 로우픽 등정.
키나발루 산에 오르는 첫 관문인 팀폰게이트 앞엔 산악마라톤(Climbathon)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엘리트 코스는 키나발루 국립공원에서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코스인데,
남자 최고 기록이 4시간 12분 29초라니, 존경스럽다.
산을 함께 오르내린 가이드 윙쓴(WINCENTBERT LATIUS)도 산악마라톤 선수이다.
작년에 MEN OPEN에 출전하여 2:37:01의 기록으로 5위를 했단다.
이런 고수가 안내자여서 혹시 산에서 변수가 생겨도 대처능력이 뛰어날 것 같아 안심된다.
키나발루 산 로우픽 등정 일정은 이틀로 나뉘는데,
첫날은 산장까지 6Km, 둘째 날은 2.8Km 정도를 더 걸어 정상에 올랐다가 산에서 내려온다.
키나발루 산은 등산로를 잘 정비해 두어서 쉬엄쉬엄 걸으면 된다.
하늘도 맑고, 쭉쭉 뻗은 나무도 멋지다.
그리고 처음 보는 다람쥐(Slender squirrel - Sundasciurus tenuis)가 이리저리 분주히 돌아다닌다.
생김새가 평소 보던 다람쥐랑 달라서, 마모트인 줄 알았는데 다람쥐란다.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식충식물도 산 곳곳에 보인다.
식물원에 가도 이런 커다란 식충식물은 못 봤는데, 이 정도 크기면 새도 잡아먹겠다.
짐을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얼마 걷지 않아도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하늘이 노랗다.
해발 100m 이하에서 생활하다가 갑자기 해발 2,000m에 올라와서 몸이 적응을 못하나 보다.
눈앞에 구름이 펼쳐진 모습이 신비롭다.
용이 산다면 이런 데 살지 않을까?
‘후우. 후우. 힘들다.’
쉼터가 나올 때마다 쉬며 올라왔다.
‘해발 3137m. 조금만 더 오르고 숙소에서 편히 쉬자!’
사슴뿔처럼 멋지게 자란 나뭇가지와 파란 하늘이 참 잘 어울린다.
드디어 라반라타 산장이다!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세요.’
‘발자국 말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마세요.’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두지 마세요.’
연습 중인 산악마라톤 챔피언.
‘지금껏 봤던 모든 말벅지는 잊어라.’
지친 몸을 쉬려고 언덕 위 팬단 헛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어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 3시가 다 되어 도착했으니, 거의 여섯 시간이 걸렸다.
거리가 6Km이니 한 시간에 1Km 정도 걸었나 보다. 그런데 숨이 차고 무척 힘이 든다.
약간 고산 증상도 있고,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아 산 타는 요령이 없어 그런가 보다.
저녁은 라반라타 산장에서 먹는다.
이런 경치에서는 빵에 달걀 하나만 부쳐 넣은 샌드위치도 맛 좋겠지만,
저녁이 아주 푸짐하게 잘 나온다.
양고기, 닭고기, 채소 볶음...
거기다 푸딩과 케이크, 쿠키 등의 후식까지!
든든하게 잘 먹었다.
해 질 녘 풍경.
분명 저 앞에 펼쳐진 것은 하늘인데, 마치 파도 거품이 이는 바다를 보는듯하다.
저녁 여덟 시쯤 잠이 들고 새벽 한 시 사십 분에 일어났다.
머리가 개운하지 못하다.
산장에서 간단히 먹을거리를 주지만, 식욕이 없어 차만 몇 잔 마시고 등반에 나섰다.
저 아래 보이는 마을 불빛이 마치 철새가 떼 지어 날아가는 모습 같다.
키나발루 산 정상을 향한 한 걸음 한걸음이 힘겹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무척 좋지 않다.
마치 토할 것 같이 메스껍고 눈도 아프다.
백 미터만 걸어도 숨이 차고 죽겠다.
고산지대에 취약한 몸인가 보다.
정상에서 해 뜨는 모습을 보려고 꼭두새벽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몸은 고산병에 힘들고, 하늘은 비바람을 세차게 뿌려 인간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냥 다 집어치우고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힘겹게 정상에 도착하였으나, 생명에 위협을 느껴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빗방울이 얼굴을 때려서 아프고 눈뜨기가 어렵다.
게다가 정상은 ‘여기가 정상임.’ 푯말 하나가 바위에 꽂혀 있을 뿐. 좁고 볼품없다.
위에는 방수 재킷을 입어 괜찮지만, 바지는 방수되지 않아 홀딱 젖었고 장갑도 모두 젖었다.
온몸이 떨리고 손이 얼어 감각이 없다.
얼굴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키나발루 산 정상 풍경을 만끽하고 싶었으나,
그보단 사지 멀쩡하게 살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다.
비바람을 헤치며 돌길을 부지런히 내려간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몸과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지점이 나왔다.
바람도 좀 덜 불고, 빗발도 약해졌다.
이 바위산은 말레이시아 1링깃과 100링깃 화폐에 그려진 바위산으로,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배웅한다.
비가 그친다.
이제 좀 살겠다.
‘저길 올라갔었다니!’
숙소로 내려와 먹은 간단한 식사.
식빵에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발랐을 뿐인데 정말 맛있다.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전날보다 더욱 푸르른 나무가 가는 길을 배웅한다.
다시 팀폰게이트에 도착.
키나발루 산 로우픽 등정을 하며
살면서 처음으로 고산병에 걸렸고,
지금까지 가장 힘든 등반이었다.
고산병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거다.
앞으로 또 높은 고도에 오를 일이 생긴다면,
천천히 고도에 적응하면서 올라야겠다.
키나발루 산.
비록 힘은 들었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