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렘은 리스본 시내 중심에서 서쪽에 있는 테주 강 변의 작은 마을이다.
벨렘에 가려면 리스본 피구에이라 광장(Praça da Figueira) 앞에서 15E 번 트램을 타면 된다.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파스테이스 드 벨렘에서 에그 타르트를 여섯 개나 먹고선 배를 두드리며 느긋하게 구경을 시작했다.
우선 제로니모스 수도원을 둘러볼까 줄을 섰다가 마음이 바뀌었기에,
산타마리아 교회에 잠시 들어가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는 나왔다.
교회 안에는 인도 까지의 항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의 석관과,
포르투갈의 민족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교회를 나와 베라르도 현대미술관을 둘러보고는 벨렘 탑을 향해 걸었다.
벨렘 탑 앞은 탑에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 북적임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는 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진자(Ginja)한잔을 걸친다.
역시 뜨거운 태양 아래서 낮술 한잔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게 만든다.
사랑은 보이지 않게 타버린 불(Amor é um Fogo que Arde sem se Ver) - 카몽이스
사랑은 보이지 않게 타버린 불이요,
아직 아픔을 느끼지 못한 상처다.
항상 불만족스러운 만족이요,
아픔 없는 격노의 고통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오랜 열망이며,
많은 사람 가운데서 느끼는 외로움이다.
기쁠 때는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기쁨의 느낌이요,
이성을 잃으면 떠오르는 격정이다.
이것은 당신의 자유의지로서 노예가 되게 하고,
당신의 승리와 패배를 기록하며,
또한 당신을 죽이는 자에게 충성을 다한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자기 모순적이라면,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하기를 원할 때,
사람의 마음을 연민으로 이끌어낼까?
리스본 지하철에서 베라르도 현대미술관 광고를 보았다.
몽환적인 샤갈의 작품 한가운데 사람이 조그맣게 서 있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잠시 스쳐 지난 터라 위치도 몰랐는데, 벨렘에 왔더니 베라르도 현대 미술관이 보인다.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미술관으로 향했다.
몬드리안, 달리 등 널리 알려진 작가의 작품들과,
미술과 친하지 않다면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작품까지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장 뒤뷔페(Jean Dubuffet) - Miro G42, 1983
앙리 미쇼(Henri Michaux) - Untitled, 1962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 Sabro, 1956
장 파울 리오펠(Jean-Paul Riopelle) - Abstraction (Orange), 1952
특히 이 네 점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조셉코수스(Joseph Kosuth)작가의 SELF-DESCRIBED AND SELF-DEFINED를 스쳐지나다가 걸음을 잠깐 멈추었다.
왜 이 네온사인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을까 그땐 몰랐지만,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초반에는 서로를 묘사한다.
밥을 많이먹고, 바쁘고, 해맑고 등등….
그러다 어느 순간 그것은 정의가 된다.
대식가.
워커홀릭.
밝은 사람.
한 번 정의한 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이상하게 생각한다.
“너 왜 그렇게 조금 먹어? 어디 아파?”
“웬일로 요즘 한가해?”
“어째 기운이 없어 보인다? 왜 그래?”
그러나 존재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고, 정의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정의는 비록 편리할지언정 정교하지는 못하다.
좋은 작품들을 보고서 미술관을 나섰더니 쨍한 하늘이 반긴다.
베라르도 현대미술관
리스본에 들렀다면 여기서 보물을 찾으며 하루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가끔 단 게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비가 오거나 맑을 때.
혹은 별이 깊은 밤이나 해가 쨍한 낮에 특히 그렇다.
이날은 해가 쨍해서 그런지 유난히 에그 타르트가 당겼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에그 타르트 집이다.
벨렘의 페이스트리!
먼 먼 옛날 18세기 쯤에,
벨렘의 수도원과 수녀원에서는 달걀흰자로 옷에 풀을 먹였고(귀한 달걀로!),
노른자를 버리기는 아까워서 에그 타르트를 만들어 먹었다.
그러다가 1820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혁명으로 수도원과 수녀원이 문을 닫으면서 성직자와 노동자들이 대거 실직했는데,
벨렘의 제로니모스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이게 아주 유명해졌다.
그래서인지 줄이 아주 길게 서 있지만,
파스테이스 드 벨렘 빵집은 아주 넓으므로 에그 타르트를 맛보기까지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에그 타르트 뿐만 아니라 다른 빵도 며칠 먹으며 천천히 맛보고 싶지만, 일단 에그 타르트를 먹기로 한다.
에그타르트(nata)는 포르투갈어를 몰라도 주문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근데 음료 이름은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그래서 우아하게 옆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같은 거로 주세요."
이 음료의 이름은 갈라옹(Galão)으로 에스프레소와 폼밀크를 섞은 것이다.
에그 타르트에 어울리는 음료다.
에그 타르트 한 접시.
바삭바삭함과 부드러움이 잘 어우러졌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
명불허전 에그타르트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