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댐에서 충주 수안보까지. 문경새재길 자전거 여행.
안동에서 자전거 길 여행을 시작한다면, 버스 터미널보다는 안동 역이 더 가깝다. 그러나 자전거 좌석은 경쟁이 치열하니 한 달 전에 예약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이번 여행을 위해 한 달전에 미리 표를 끊으려고 했는데 토요일 출발 기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그래서 금요일 밤 기차를 예약하고 시간에 맞추어 청량리역에 도착!
자전거를 실으려고 하니 카페 열차가 이미 수십 대의 자전거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자전거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규정상 지정 좌석을 구매하지 않으면 자전거를 싣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모두가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실었다.
이 때문에 입석으로 열차 칸에 탑승한 일반승객들만 고초를 겪었다.
자전거 좌석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은 아쉬우나, 그렇다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자전거를 들고 타면 자전거 타는 사람 모두가 욕을 먹는 지름길이다.
여행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나만 즐거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배려하는 게 진정 즐거운 여행이 아닐까?
밤 기차를 타고 자정이 넘어서 안동역에 도착했다.
월영교 근방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 일찍 나와 주변을 돌아봤다.
월영교, 안동 민속박물관, 안동 민속촌을 구경했더니 금방 점심때다.
안동 시내에서 점심을 먹고, 쉬엄쉬엄 페달을 밟았다.
힘든 길 없이 평탄한 길을 계속 가다가 경사가 심한 언덕이 나왔다.
겨우 넘어 내려왔더니 커다란 돌멩이에 쓰인 글씨가 눈에 띈다.
‘한계’
겨우 고개 하나 넘은 걸로 한계라고 하긴 뭣하다.
그러나 곧 500m짜리 오르막이 나오는데, 금방 심한 고개를 넘어온 터라 다리가 뻐근하다.
그래도 고개를 넘으며 나타난 풍경이 아름다워서 경치를 구경하다 보면 오백 미터가 금방이다.
언덕을 넘어 달리다 보면 마애 솔숲 유원지가 나온다.
캠핑하는 사람이 많은 편임에도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 유원지였다.
유원지 끝쪽에 식수대가 있으니 목이 마르면 이곳에서 목을 축이고 식수를 보충하도록 하자.
유원지에서 조금 더 달리고, 하회마을 인근에서 숙소를 잡았다.
숙소 근처에는 부용대가 있는데 450보 정도 올라가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이 표지판을 발견한 사람 중 열에 아홉은 발자국을 세며 올라간다.
평소에 한발자국 한발자국 눈여겨보는 일이 드문데, 덕분에 한참 동안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보폭을 좁게 하여 올랐더니 460보가 나왔다.
다음번에 안동에 오게 되면 저 하회마을에 한번 묵어봐야겠다.
다음 날은 아침에 일찍 출발하여 예천에서 잠시 쉬어갔다.
쌍절암 생태숲길이라는 곳인데, 산책로가 참 잘 되어있다.
자전거로 내리닫다가 천천히 걸으며 숲 내음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다.
상주 상풍교 인증센터를 지나면 커다란 돌에 ‘낙동강 칠백 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고 쓰여있다.
자전거로 여행도 좋지만, 나중엔 배낭 하나 메고 걸어서 여행을 해봐야겠다.
문경새재 자전거길 중간 중간에 매립형 자전거 보관대가 있다. 앞바퀴를 들어서 넣을 필요가 없어서 편리하다.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옆에 문경항공 경비행기 세 대가 서 있다. 경비행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공간인가보다.
뙤앙볕에 그늘이 간절할 무렵 관수정(観水亭)이 나타났다. 널찍하게 잘 지어져서 편안히 잘 쉬었다.
이 동네는 고기가 많이 잡히나 보다. 너도나도 고기를 잡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불정역 인증센터를 지나면 계곡과 푸른 길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는 중에 어디선가 북 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린가 가서 봤더니, 아프리카 전통음악에 맞춰 아프리카 춤을 추고 있다. 신난다.
짱구 울라울라 춤이 아프리카 춤을 보고 만든 게 아닐까?
모내기가 한창이다.
평소엔 내가 먹고 있는 쌀밥이 어디서 나오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로 목구멍을 넘어가 버리는데, 밖에 나오니 이렇게 모내기하는 모습을 다 본다.
문경새재 앞에서 하루 묵어간다.
온종일 페달을 밟아서 그런지 막걸리 한 모금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만복 오미자 생탁배기. 새콤달콤한 게 술술 잘 넘어간다.
여행의 마지막 날.
문경새재 도립공원에 들렀다.
자전거는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니, 주차장에 세워두고 들어가야 한다.
작은 폭포도 하나 보이고 꽤 마음에 드는 곳이다.
한 시간쯤 산길을 따라 걸어올라 혜국사에 도착했다.
원래는 법흥사라는 이름의 절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승려들의 활약이 커서 혜국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 역사 깊은 절에서 초파일 점심 공양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내려왔다.
뙤앙볕을 피하려고 일찍 출발하였는데 결국 가장 더울 때 이화령을 넘게 되었다.
이화령을 오르는 것은 그리 힘들지는 않다. 다만 긴 오르막이고 그늘도 없어서 여름 대낮에는 좀 힘겹다. 게다가 쉼터도 해가 쨍쨍해서 쉬어 가기도 어렵다.
그래도 우선 정상에 올라오면, 그다음엔 한참 동안 내리막이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가장 긴 내리막.
재미있다.
언덕을 오를 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의 신난 표정이 이해가 된다.
아쉽지만, 이화령을 내려왔다고 다 끝난 게 아니다.
소조령을 넘어야 하니까.
이화령을 넘고 이제 다 왔다는 마음이라 소조령이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뭐 이화령에 비하면 경사가 심하지 않다.
드디어 목적지인 수안보 도착!
인증센터 바로 옆에 족욕 온천탕에서 발을 잠시 담그고 나니 피로가 풀린다.
역시 자전거 여행은 마냥 달리는 것보다는 중간중간 쉬어가며 천천히 하는 게 더 즐겁다.
by 月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