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섬진강 자전거 여행
작년 이맘 때쯤 올해는 섬진강에 매화 구경을 한번 가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매화가 필 때가 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벚꽃도 다 떨어질 무렵이 되어서야 섬진강 여행을 떠났다.
어여쁘게 꽃단장한 모습을 보러 많은 사람이 다녀가고 이제는 꽃구경 인파가 내년에나 몰려들 테지만, 조금 늦게 꽃구경을 떠나는 것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주류에 속해 모두가 함께 뿜어내는 생동감이 봄기운을 돋우긴 하지만, 남들보다 천천히 핀 꽃이라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류의 꽃구경은 그 웅장한 분위기와 그 향에 취하고, 비주류의 꽃 구경은 그 꽃 한 송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가 시선을 끈다.
‘당신에겐 여름이 왔는가?
나에게는 이제 봄이 왔다.’
푸른 잎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꽃이 눈길을 잡아끈다.
늦봄의 섬진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전북 임실군 강진에서 시작하면 좋다.
인천에서는 직통버스가 없으니 전주에서 순창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리면 되는데, 인천에서 강진행 직통이 있길래 냅다 예약했다가 그 강진이 전남 강진이라는 걸 알고 출발 전날 취소했다.
결국, 순창을 거쳐서 강진에 도착했다.
아침 아홉 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는데,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자전거를 타기도 전에 지쳤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이런 어정쩡한 시간에 자전거 길을 시작하는 사람은 드물어서 길이 한적했다. 덕분에 산 새의 지저귐과 물 흐르는 소리. 바람에 묻어 날리는 꽃내음을 여유롭게 느꼈다.
장군목 인증센터 옆에는 마실휴양숙박시설단지가 있어서, 하루 묵어 가기 좋다.
아직 쉬기엔 일러서 조금 더 달렸지만, 날이 금방 어두워졌다.
내리막길에서 고라니를 칠 뻔하고 깜짝 놀라서는 자전거 타길 멈추고 쉴 곳을 찾았다.
88고속도로 가기 전에 작은 다리가 하나 있는데, 그 밑에서 텐트를 치면 비를 피해 눈을 붙이기 괜찮다.
이른 아침 짐을 정리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먹거리를 좀 준비해 오긴 했지만 푸짐하게 먹을 정도는 아니다.
섬진강 자전거길에는 먹거리를 구할 만한 곳이 쉽게 눈에 띄지 않으니, 넉넉히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중간중간 먹거리를 구할만한 곳이 보이면 지체 않고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해두는 편이 좋다.
향가 유원지 인증센터와 횡탄정 인증센터까지는 오르막이 심심치 않게 있어서,
자다 일어난 장딴지를 깨우기 좋은 곳이다.
횡탄정 인증센터를 조금 지나면 두가헌 이라는 숙박⋅카페가 보인다.
여유롭게 차 한잔 하고 가려고 했는데, 마침 문을 닫는 날이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지나쳐갔다.
곡성군 청소년 야영장 앞에는 자전거 대여점과 주전부리, 음료를 파는 곳이 있다.
구례구역 앞에는 식당과 마트가 있어 식량을 구하기 좋은 곳이다.
이 이후로 자전거 길에서 멀리 벗어날 생각이 없다면, 여기서 물과 비상식량을 구하는 것이 좋다.
사성암 인증센터 앞에는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서 천막을 치고 먹거리를 판다.
아마도 산악회 등에서 단체로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듯싶다.
사성암에서 남도대교까지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쉼터가 하나 있다.
밤이 늦었다면 여기서 텐트를 치고 하루 묵어가는 것도 괜찮겠다.
남도대교 인증센터까지 왔다면, 화개장터를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초코바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밥으로 배를 채우기에 좋기 때문이다.
자전거 길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도 아니라, 다리 하나만 건너면 바로 화개장터다.
화개장터에 자전거를 세워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친절한 경찰 아저씨께 양해를 구하고 경찰서 한쪽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저녁을 먹었다.
잘 먹었더니 졸리다.
밤부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았기에 텐트를 칠만한 적당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패달을 밟았다.
다행히 남도대교에서 매화마을까지 가는 길에는 정자가 몇 곳 있다.
정자에 텐트를 칠 땐 팩 대신 나무젓가락으로 바닥 틈새에 고정하면, 바닥을 상하지 않게 텐트를 칠 수 있다. 물론 텐트를 접을 땐 나무젓가락을 모두 거둬서 버려야 한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정자에 텐트를 친 덕에 비를 피해 밤을 보냈다.
비가 그쳤으면 좋으련만, 아침에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그래도 아주 강한 비는 아니어서 비를 맞으며 길을 나섰다.
비가 올 때 밖에 나다니는 건 달갑지 않지만,
그럴 때 나가야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나는 특히 비가 내릴 때 풍경이나 비가 막 그친 때를 좋아한다.
매화 마을 인증센터를 지나니 다 온 기분이다.
밤새 내린 비에 벚꽃은 다 떨어졌지만, 유채꽃은 이제 막 피려고 준비 중이다.
꽃이 다 져버렸다고 슬퍼하지 마라.
지금 떨구어야 내년에 다시 꽃을 피울 테니.
활짝 피었던 그 시절에 얽매이지 마라.
지지 않는 꽃. 시들지 않는 꽃은 이미 죽은 꽃이다.
큰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옆으로 위태롭게 다리를 건너면,
자전거 길이 두 갈래다.
직진하면 동광양(중마) 터미널 쪽이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꺾으면 배알도 수변공원 인증센터다.
이 표지를 미처 못 보고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인증센터로 향했다.
힘들다.
맛있는 걸 먹고 지친 몸을 달래야겠다.
‘광양에 왔으니 광양 불고기를 한 접시 먹어볼까?’
동광양 터미널 근처엔 마땅한 광양 불고기 집이 없단다.
그래서 시청 옆에 금정이라는 식당에서 불고기를 먹었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썩 맛있지도 않다.
뭔가 아쉬운 맛이다.
원래 광양 시내를 하루 정도 돌아보려고 했다가,
그냥 올라가기로 마음을 바꾸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섬진강 자전거길은 지금까지 다녀온 자전거 길 중에서 길이 가장 좋다.
경치도 좋다.
그중 으뜸은 섬진강 댐에서 장군목 구간으로, 나중에 꼭 한번 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by 月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