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과 몇 편의 수필 모음.

저는 그의 글이 참 좋습니다.
솔직하고 유머가 풍부해요.
그가 추구하는 삶을 적은 몇 편의 글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죠.
<월든>과 이번에 읽은 <시민의 불복종>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모든 책이 널리 알려진 건 아니에요.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란 책은 초판 1천부 중 삼백 권도 안 팔렸다고 하네요. 팔리지 않은 책을 집으로 가지고 온 그는 저널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합니다.
‘나는 900권이 조금 못 되는 장서를 가지고 있는데 그중 700권 이상의 책은 내가 직접 저술한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옵니다.
제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분명 한 권 사 보았을 텐데 아쉽네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글에는 생동감이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을 손으로 적어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경험한 것을 가슴으로 뿜어내기 때문이죠.
<시민의 불복종>과 <야생 사과> <돼지 잡아들이기>등의 수필을 엮은 이 책 또한 에너지가 넘칩니다.
이 좋은글을 우리글로 옮겨주신 강승영 번역가님. 고맙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의 교감

옳고 그름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다수가 아니라 양심인 그런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 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나무나 흙이나 돌과 같은 위치에 놓아버린다.

내가 만약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으로부터 부당하게 널빤지를 빼앗았다면 나는 비록 나 자신이 물에 빠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널빤지를 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덕을 찬양하는 사람이 999명이라면 진짜 덕인은 한 사람뿐이다.

투표는 모두 일종의 도박이다. 장기나 주사위놀이와 같다. 단지 약간의 도덕적 색채를 띠었을 뿐이다. 도덕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옳으냐 그르냐 노름을 하는 것이다.

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

부자는 언제나 그를 부자로 만들어준 기관에게 영합하게 마련이다. 단언하는 바이지만,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덕은 적다. 왜냐하면 돈이 사람과 그의 목적물 사이에 끼여들어 그를 위해 그것을 획득해 주기 때문이다.

돈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유일한 새로운 문제는,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어려우면서도 부질없는 문제 뿐이다. 이리하여 부자의 도덕적 기반이 발밑부터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이른바 ‘수단’이란 것이 늘어갈수록 삶의 기회들은 줄어든다.

학교 교사는 목사의 생활비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데, 왜 목사는 학교 교사를 위해 세금을 내지 않는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름다운 처녀를 보면 나는 그녀의 장밋빛 볼에 관심을 갖지, 그녀가 주로 무슨 음식을 먹는가를 알아내려고 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거부하지 말라. 인간은 겨우 몇 가지 자연식품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러나 자연 전체가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연’은 건강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각 계절은 건강의 각기 다른 상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농부들이 접붙이기 위해 고르는 사과들은 그들이 지닌 어떤 발랄한 맛 때문이 아니라 대개는 맛이 순하다거나 크고 열매를 많이 맺는 특성 때문에 선택이 되며, 과일의 아름다움보다는 매끈하고 흠이 없는 점 때문에 선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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