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북쪽길. 이룬에서 파사이 도노스티를 거쳐 산 세바스티안 까지.
지난 여름 카미노 데 산티아고 북쪽길을 조금 걸었다.
오랜만에 도보여행이라 몸은 힘들었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 북쪽길을 걷는 첫 날.
파리에서 밤 기차를 타고 아침에 이룬에 도착했다.
온종일 걸어야 하니 기차역 근처 빵집에서 가볍게 아침을 먹고 걸음을 떼었다.
이룬 순례자 숙소에서 순례자 여권(Credential - 크레덴시알)을 받아 가려고 했으나, 오후 4시부터 문을 여는 관계로 일단 출발했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다.
여행을 참 잘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걷는데 앞에 소가 한마리 보였다.
이 녀석은 좁은 길에서 통행료를 받으려는 듯 길을 딱 막고 서서 풍경을 감상한다.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더니 씩씩거리며 뿔로 들이받으려고 한다.
잘못해서 소뿔에 치이기라도 하면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끝내게 된다.
재수가 없다면 이번 여행뿐 아니라 이번 생도 같이 마감이다.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스레 소 눈을 바라보며 빠르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이 길을 지나는 동안 소를 여러 마리 만났지만 다른 소들은 그리 공격적이지 않았다.
바스크 지방에는 바스크 깃발이 자주 보인다.
애향심이 강한가 보다.
하긴 스페인에서 독립하려고 무장 투쟁을 했던 지방이니 그럴만도 하다.
파사이 도니바네.
작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곳 알베르게에서 크레덴시알을 받고 산 세바스티안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그만 걷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그래도 산 세바스티안까지는 걸어보기로 했다.
산 세바스티안이 5km 남짓 남았을 때 힘이 다 빠져버렸다.
도저히 못 걷겠다 싶을 때 나타난 휴식처.
열두 지파(http://www.twelvetribes.org)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마테차에 오렌지를 섞은듯한 음료가 참 맛있었다.
뱃속에 음식이 들어가니까 산 세바스티안까지 걸을 힘이 생겼다.
덕분에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했다.
by 月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