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 아버지의 등
아기 용품 - 아버지의 등
천도 복숭아 - 아버지의 등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가니,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야! 너 내 번호도 모르면서 전화도 한번 안 해보고 내려오면 어떻게 해?"
번호가 바뀐 줄 몰랐다.
하지만 어쨌든 만났으니까.
친구는 낚시를 가고 싶어했지만,
풍랑 주의보 때문에 삼박사일을 친구 집에서 보냈다.
어차피 얼굴 보러 간 거니,
어디에 있는지는 별 중요하지 않다.
친구 컴퓨터에 깔려있는 게임도 하고,
아프리카 사자의 생활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도 보았고,
때론 술도 한잔 하며, 잘 놀다 왔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또 친구는 흘러간 영화를 보길 좋아하는데,
전에 왔을 땐 대부1,2,3을 함께 보았고,
이번엔 취권2.
엽문 시리즈등의 흘러간 영화를 보았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저번에 부산에 내려왔을 때와 달라진 것은,
친구가 곧 예쁜 딸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다.
'애가 생기면 뭐가 달라질까?'
궁금했다.
친구네서 지내는 중,
친구 커플과 아기용품을 사러 갔다.
양말.
젖병.
욕조.
그리고 이름 모를 아기 용품들.
이날 따라 친구의 등이 아버지의 등으로 보인다.
믿음직스러운 등.
그리고 어떤 짐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듯한 어깨.
아기 용품을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여,
친구와 둘이 장을 장을 보았다.
과일 코너에서 친구는 천도 복숭아를 집어 들었다.
'30% 할인 초특가! 두 개에 구천 육백 육십원?!'
친구도, 나도 미친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끼리 놀러 갈 때 장을 보았다면 아무도 집어 들지 않았겠지만,
이 친구는 곧 아버지가 되니까.
"얼마 전에 천도 복숭아가 땡긴다 하더라고."
라며 장바구니에 복숭아를 집어 넣는다.
장을 보고 와서, 친구 커플이 해준 근사한 저녁을 먹고 잤다.
다음날.
친구 컴퓨터에 깔린 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책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
"이순신 장군님은 아주 훌륭한 장군이었어요."
딸을 여장부로 키우려고 하나 보다.
딸에게 이순신 장군 전기를 읽어주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버지가 된다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지금 친구의 기분은 어떨까.
사람은 살면서.
가까운 가족 관계를 세번 맺게 된다고 한다.
첫째는 부모님의 선택으로 태어나, 자식이 되는 관계.
둘째는 서로의 선택에 의해서, 부부가 되는 관계.
셋째는 부부의 선택으로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는 관계라고 한다.
친구는 가족 관계의 첫째인,
자식으로서의 역할로 유지하며 한참을 살아왔다.
사물을 분간하고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십 년도 넘게 그렇게 살아 온 것이다.
그러나 부부가 되고, 부모가 되는 가족관계는,
살아왔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순식간에 맺어진다.
그래서 친구에겐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도 보였지만
동시에 세가지 역할을 맡게 된 것에 대한 약간의 부담감.
새로운 역할에 대한 낯설음이 보였다.
그래도 잘 살아가리라 믿는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by 月風